뭔지 모를 억울함
뭔지 모를 억울함
  • 안산뉴스
  • 승인 2019.03.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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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미세먼지 때문에 목은 칼칼하고 눈은 따갑건만 올해도 어김없이 아파트 단지 내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았고, 화랑 유원지 팔각정에는 매화가 꽃을 피웠다며 지인이 사진으로 담아 문자로 전송해 주었다. 비록 자연 법칙에 의해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일 뿐이며, 나같이 지천명을 넘긴 사람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시간의 흐름이건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이 덩달아 들썩이는 것을 보면 봄은 봄인가 보다.

하지만 그렇게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내 가슴의 한 켠을 묵직하게 누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개학 며칠 전 저녁 식사 시간에 아들 녀석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평소에 알바라고는 생각지도 않던 큰 녀석이 이번에 학교 앞 식당에서 하루 4시간씩 주3일 알바를 하게 되었다며 이제는 아빠한테 용돈 때문에 손 안벌릴꺼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난겨울 두 아들 녀석의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허덕이던 내 모습이 녀석에게 나름 안쓰럽게 보이고 또 부담으로 다가왔던지 그 사이에 알바 자리를 알아보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대학 등록금이 그리 비싸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수백만 원의 돈을 단지 몇 개의 수강 과목만으로 나누면 등록금이 무척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대학의 등록금은 단지 강의실에 앉아 강의를 듣는 비용만이 아닌, 6개월이라는 시간을 구매한 비용이라고 생각해 왔다. 따라서 등록금을 6개월로 나누면 1개월 당 70~80만원 수준이며, 이 비용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구매했다고 생각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라는 것이내 생각이었다. 물론 이것은 시간을 값지게 사용한다는 전제 아래서의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나는 대학생들에게 있어 시간은 피와 같은 것이고 알바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치 피를 팔아 돈을 버는 것과 같으며, 따라서 대학 생활은 머리가 아닌 발로 하는 것이기에 알바 대신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정말 돈을 아끼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아니 이것은 내가 30여 년 전 대학 다닐 때부터 가졌던 생각이었고, 그래서 나 역시 집안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음에도 알바 대신 공부를 비롯해 나름 알차게 대학 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몇 학기에 걸쳐 두 아들 녀석의 등록금 고지서에 ‘억’소리를 내다보니 큰 녀석이 알바를 구했다는 소리에 평상시의 소신을 쉽사리 건네지 못하고 네가 한 결정이니 알아서 하라며 비겁하게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나는 내 소신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지금의 등록금은 비록 몇 년째 동결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너무나 비싸고 서민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져가기만 한다. 그래서 알바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전화 돌리고 인터넷을 서핑하는 자식을 차마 만류하지 못하고, 대신 못난 부모를 둔 자식에게 미안해하며 공부에만 전념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이 원인 모를 억울함은 무엇이지? 커피 전문 매장에서 식사 한 끼 값 이상의 커피와 케잌을 놓고 둘러 앉아 함빡 웃음 짓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 부모님의 손에 든 자판기 종이컵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내 자신이 꼰대 같이 여겨지는데, 그런 꼰대 같은 내 자신이 무척 초라하고 궁색해지는 느낌이 드는 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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