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어떻게 매대에 올려지는가
여성은 어떻게 매대에 올려지는가
  • 안산뉴스
  • 승인 2019.04.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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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청년활동가

최근 버닝썬 게이트에 관련된 공권력의 유착, 비호 의혹이 드러나면서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성범죄에 가담한 연예계 인물이 하나둘 드러남과 동시에 유착의혹이 있는 전·현직 경찰관들이 잇따라 소환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공권력만이 문제인가? 조사에서 확보된 ‘정준영 카톡방’은 지금까지 공론화되어온 남성연대의 카톡방과 아주 유사했다. 여성에 대한 외모평가와 더불어 고깃덩이처럼 등급을 매기고, (약물)강간모의를 하고,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는 등 여성혐오와 성범죄를 유희처럼 즐기는 남성카르텔은 결코 일부 상위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인 만큼 여성들이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았든 범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성 상품화, 성적대상화에 의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계속 바닥을 치고 있으며 어떤 관계에서든 (초면이든, 친밀한 관계이든)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다. 불법촬영 사건이 드러나면 피해자 영상을 구한다는 댓글이(이것을 농담으로 소비하는 거라면 더욱 끔찍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영상’ 키워드가, 아직도 수없이 존재하는 불법촬영물 사이트의 검색어 상위권을 자리 잡는 것이 지금의 지독한 현실이다.

여성들의 피해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클럽에 가는 여성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2차 가해에 불과한 생각이니 빨리 접길 바란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길가에서도, 지하철, 버스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뭘 입고 어딜 가든지’ 성폭력은 발생한다. 우리가 가는 대부분의 곳이 가부장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외모에 대한 등급이 찍히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 ‘매대’가 된다.

이 구조 속에서 스스로 상품이 되기를 선택하는, 그러나 결코 그 선택이 ‘자발적’일 수는 없는 여성들도 있다. 그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들이 자유롭지 않은 것처럼 페미니스트들 역시 자유롭지 않은 구조 속의 피해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흉자’라고 비난하며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게 아니라 가부장제, 남성연대, 알탕카르텔에 분노하고 모두의 자유를 갈망하며 외치는 일일 것이다.

남성연대의 존재로 인해 버닝썬 게이트에 대해 느끼는 온도차도 발생한다. 페미니스트들이 피해자 2차 가해 금지 홍보물을 돌리는 동안 일부 남성들은 버닝썬 사건을 희화화한 농담을 던지며 시시덕거린다. 참고로 이건 미투 공론화 때도 그랬다. 이렇게 남성연대에 대해 지적하면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며 발뺌하는 사람들의 레퍼토리도 이제 지겹다. 인터넷에 퍼지는 #NotAllMen 밈(meme)에는 어떤 이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일갈하고 싶다. ‘Not all men, But always men.’

사회현상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판국에서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은 이미 물에 빠진 상태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가장 노예가 되기 쉬움을 기억하라. 피해자가 되는 사람은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 아니며, 가해자가 되는 사람은 극악무도한 악마가 아니다. 이 비틀린 구조 속에서는 누가 피해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고 누가 가해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사회운동 속에서 적폐라는 타이틀은 간단하게 붙는데 유독 여성문제에는 적폐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과정이 참 조심스럽다. 남성연대 스스로가 적폐임을 인지하고 자정하기 어려운 까닭일지.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이 현상과 문제를 적폐라고 부르겠다. ‘강간하지 마시오.’ ‘동의 없는 신체접촉 하지 마시오.’ ‘동의 없이 촬영하지 마시오.’ ‘불법촬영 영상을 소비하지 마시오.’ ‘피해자를 궁금해 하지 마시오.’ 당신의 성별이 어떻든 당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쳐야할 적폐청산 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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