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희망고문
  • 안산뉴스
  • 승인 2019.04.1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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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사람을 만든 후 직립보행을 하게 해서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늘을 쳐다보게 했다. 또한 고기를 가지고는 신들을 속여 인간이 신보다 고기의 더 좋은 부분을 가지게 해서 신들의 화를 북돋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하늘의 불을 훔쳐다가 인간의 손에 넘겨주어 인간은 이후 추위도 동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에는 신을 경외의 대상이 아닌 희롱의 대상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이에 잔뜩 화가 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쇠사슬로 묶어 놓은 후 날마다 독수리로 하여금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게 하는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제우스는 분노의 화살 끝을 인간에게도 겨누게 된다. 제우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명을 내려 아름다운 여성을 만들게 하고는 그녀에게 판도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우스는 이 판도라를 헤르메스를 시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건네준 후 그의 아내로 삼게 하는데 이때 헤르메스는 판도라와 함께 잘 포장된 상자를 건네주었다.

한편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판도라와 상자를 동생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에피메테우스에게 그 상자를 절대로 열어보지 말 것과 또한 판도라가 행여라도 상자를 열어보지 못하도록 잘 단속하게 하였다. 이에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에게 절대 열어보지 말 것을 주문하고는 잘 간수해 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태생이 호기심이 많고 또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판도라는 점차 선물 상자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더 커져가게 되고 끝내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게 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여는 순간 상자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가 버리게 되었다. 이 상자에서 빠져나간 것들은 육체를 괴롭히는 통풍, 복통, 류머티즘에서부터 정신을 괴롭히는 질투, 원한, 복수 등 인간을 고통에 빠트리는 무수한 재앙들이었던 것이다.

판도라는 놀라서 얼른 상자를 덮었지만 이미 모든 것은 멀리 날아가 버린 뒤였고 상자 밑바닥에 하나 남은 것이라고는 ‘희망’이란 것뿐이었다. 결국 판도라는 이 ‘희망’마저도 밖으로 날아가게 해줌으로써 인류는 상자가 열린 이후 온갖 고통을 당하게 되지만 그나마 희망이란 것 때문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의 사람이 다 알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제우스는 인간을 괴롭히고자 건네준 재앙이 담긴 상자 안에 ‘희망’을 넣어둔 것이었을까? ‘희망’은 인간을 벌하자는 제우스의 의도와는 걸맞지 않은 것이 아닌가? 혹시 수많은 재앙들만 넣어두자니 스스로도 인간에게 미안하고 또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재앙을 통한 고통들만 있으면 인간들이 완전히 멸망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실은 희망 역시 제우스가 보낸 재앙 중의 하나였지만 인간들이 본인들 편한 대로 이를 축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 4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초청간담회에서 청년 대표로 참석한 참석자가 ‘촛불혁명 이후로 들어선 정부에서조차도 청년정책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가 언론 매체에 보도되었다.

3년 전 1800만의 사람들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며,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며 촛불 하나씩을 들고 일어났고 그 결과로 현 정권이 들어섰다. 따라서 현 정부는 어느 한 사람의 정부도 아닐뿐더러 더욱이 일개 정당의 정권도 아니다. 이렇게 국민들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정부이기에 국민들은 그 염원이 눈앞의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또한 희망하였다. 그리고 그 희망 중의 많은 부분을 청년들의 그것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앞에서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청년을 보며 결국 ’희망‘이란 제우스가 판도라의 상자 속에 담아 놓은 여러 가지 재앙 중 인간을 제일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이었음을 확인한 듯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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