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일의 매력은 사람이다”
“마을 일의 매력은 사람이다”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9.04.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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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연구소장

주요프로필

-안산여성노동자회 회장(전)

-안산양지지역자활센터장(전)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정책국장(전)

-안산희망재단 사무총장(전)

대한민국이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 따라 세계가 주목하는 잘사는 나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부해지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된 가운데 산업화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잃어버린 부분도 있다. 마을을 잃고 이웃을 잃고 행복을 잃었다.

그러다 보니 잘사는 국가로 성장한데 비해 정작 국민의 행복지수는 매우 낮은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하게 되면서 이제는 삶의 질 향상을 통한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모두가 관심을 갖고 노력해 나가는 중이다. 전 국민이 행복지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연스럽게 이웃과 주변을 돌아보며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을공동체에 눈과 귀가 집중되면서 최근 사람 잘 모이기로 유명한 안산의 일동마을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일동마을이 이처럼 관심받기 시작한 이면에 숨은 주역이 있다.

일동을 기반으로 한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의 이진경(49) 연구소장이다. 이진경 소장은 마을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사회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5년 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 소장은 사회단체의 경우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업도, 사람도 안 남고 허무함만 남아 사람이 남는 마을 일에 관심을 가졌다. 삶의 밀착도 면에서 사회단체 일보다 ‘마을 일이 더 많이 와 닿는다’는 이진경 소장을 현장 인터뷰했다.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의 출범 취지가 무엇이고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이 일동을 기반으로 지난해 11월 사무실을 개소했다. 사람 잘 모이기로 유명한 일동이기에 가능했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일동에서 주민 스스로 마을 문제를 해결해 나가 보자는 생각에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하려다 보니 재원이 필요했다. 당연히 사회단체 경험을 살려 공모사업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프로젝트 종료 후 흩어지니까 사람도 안 남고 허무하더라.

공모사업이든 무슨 일이든 움직임 후에 마을 안에 기록이 남고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함께 활동하던 주민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

일동에 오래도록 살기 위해서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했고 협동조합 공간까지 무리하게 만들었다. 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며 주민 역량강화는 물론 자원순환 일을 하고 있다.

올해 2월 행정안전부로터 마을기업으로도 지정받았다. 전국 67개소 중의 하나이고 경기도 10개소 가운데 하나다. 퍼즐이 마을공동체를 위해 일한다는 공신력을 인정받은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퍼즐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민들의 일자리 플랫폼 역할이다.”

-퍼즐 협동조합 연구소장으로 일하게 된 동기가 있나.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안산에 정착하게 됐다. 졸업 후 반월공단에 취업했고 여성노동자회 모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결혼도 하고 29살 때부터 저소득층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안산시여성노동자회와 양지지역자활센터 등의 사회단체에서 13년여 동안 일했다. 이후 안산희망재단에서 2년여 동안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이슈에 대응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했다. 하지만 5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2016년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퍼즐에서 일하게 동기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던 관계망들을 일동마을 안으로 가져올 계획이다. 그동안 살아온 동네지만 마을 안으로 더욱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물질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동과 퍼즐 협동조합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의 구성원이나 태동 배경이 곧 일동의 주민자치 활동이다. 퍼즐 협동조합은 일동의 자식 같은 관계다.

퍼즐은 일동 활동을 기반으로 일동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다. 마을 주민의 재능과 재원으로 일이 잘되어 가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법인격 퍼즐의 지향점은 일동 공동체를 해치지 않으면서 주민과 마을 간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퍼즐 협동조합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은 일동 주민 10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조합원은 현재 60여명이다. 퍼즐은 오병철 이사장을 비롯 원덕윤 감사, 이혜정 일동상점가사람들 회장, 권성혜 일동 주민자치위원장, 조명희 일동통장협의회 총무, 장은진 일동마을 청년활동가 등이 있다.

퍼즐은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저를 포함해 조명희 일동통장협의회 총무, 장은진 청년활동가 세 사람이 상근활동을 한다.”

-퍼즐이 짧은 기간에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 이진경 소장이 있다. 어떤 역할을 하나.

“일동이 여수에서 열린 2017년 전국주민자치 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일동에서 동네를 위해 움직이는 모든 주민이 마을활동가라도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마을운동이 활성화 돼 있다.

어느 한 사람의 역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힘을 합쳐서 이뤄낸 결과물이자 아직도 현재진행형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주민자치활동 속에서 퍼즐이 탄생했다. 퍼즐이 하고자 하는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한마디로 마을공동체와 퍼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임무다.”

-퍼즐 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복잡한 준비서류를 혼자서 해냈다. 주위에서 협동조합 전문가라고 하던데.

“협동조합 전문가라고 불리기는 쑥스럽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고 사회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으로 익숙한 일이어서 그렇게 보여 진 것 같다. 전문가라기보다는 정보접근이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단체의 조직에서 하는 일과 마을 일은 성격이 다르다. 사회적경제 단체들은 사업비를 따내기 위한 공모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서류를 꾸미는 일에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뜻을 맞춰가야 하는 일이다. 어떤 일의 뜻을 모으고 결정하고 추진해가야 한다.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은 마을 일을 하는 곳이다. 이질적이면서 융합해야 한다. 사업비를 따내기보다는 어떻게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고민한다.”

-지난해 일동 정원만들기를 사실상 리드했다. 자신의 리더십 중 강점은 무엇인가.

“느리게 살고 싶어 내가 거주하고 있는 일동 마을로 돌아왔다. 동네 일이 체계화되기 위해서는 호흡이 맞아야 가능하다.

제가 갖고 있는 움직임이 주민들에게 빠른 호흡으로 느껴질 수 있다. 모든 일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기보다 항상 일동 공동체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일동 주민들은 100인합창단 등의 마을활동 경험을 갖고 있다. 주민들과 친근감 갖고 얘기하면서 풀어가려고 노력한다. 마을 갈등들이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풀어진다. 일동은 사람냄새 나는 동네다.”

-퍼즐 협동조합의 앞으로 계획은.

“일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는데도 보이지 않던 통학로 이중주차 문제가 갑작스럽게 눈에 들어오더라. 마을의 문제를 주민 모두의 문제로 엮어 낼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마을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민들의 참여가 있어야 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퍼즐 협동조합이 마을관리소가 되어야 한다. 퍼즐은 마을관리 기업이 지향점이다.”

-이름도 빛도 안 나고 소득도 없는 마을 일에 꽂히게 된 이유는.

“갑작스러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트라우마가 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을 속에서 다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을 일에 꽂히게 된 이유다. 주어진 현재를 즐기고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마을 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회단체에서 활동할 때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남는 것이 없더라. 마을 일은 사람이 보이더라. 이슈를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오히려 마을 일을 하니까 변화가 보이더라. 일동에서 마을 정원 가꾸기를 했더니 꽃도 보이고 마을 주민도 보였다. 노랑풍선 캠페인을 했더니 주민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마을 일의 매력은 사람으로 귀결된다.”

-마을 일의 애로사항을 꼽으라면.

“일동에서 움직이는 마을활동가들이 한결같이 ‘동네백수’라고 부른다. 대가없이 활동하지만 대부분 귀가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서다. 2017년부터 마을 일에 미쳐서 살아왔다.

마을 일은 신뢰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신뢰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애로사항이라기보다는 조급해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려는 시간 투자가 힘든 일이다.”

-주민자치회 조례 연구모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주민자치회가 갈 길은.

“우리나라의 주민자치 현주소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주민은 있으나 자치는 없다’이다. 주민자치가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이제는 주민들에게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주민자치를 얘기하면서 참여만 얘기하고 어떤 권한을 줄 것인지는 얘기를 안 한다. 진정한 주민자치로 가려면 결정권한을 가질 수 있는 제도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주민자치를 얘기하다가 공무원들은 주민역량이 부족하다고 평가 절하한다. 그렇지 않다. 공무원들도 처음부터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역량은 일을 해 나가면서 익히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제다. 주민자치회 조례는 주민권한 보장을 담아줬으면 좋겠다.”

-안산희망재단에서 사무총장을 지냈다. 무슨 일을 추진했나.

“안산희망재단은 모금기구다. 일반사회단체는 자립할 수 있는 재정이 없다. 재단은 공익적인 모금기구로서 자원발굴과 함께 지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양지자활센터에서 일할 때 저소득 주민들의 소액 대출 등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공제협동조합에 대해 고민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희망재단에서 일했었다.”

-안산양지지역자활센터장을 맡았었다.

“안산양지지역자활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보장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중간 지원 조직이다. 안산은 양지지역자활센터와 안산지역자활센터 2개가 있다.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 위탁받아 저소득층 여성을 돕는 일을 하는 단체다. 저소득 여성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가를 연구해서 제공하는 일을 했다.”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여성노동자들의 직장 내 불평등을 해소하고 여성노동자 조직화, 모성보호, 산후휴가 90일, 최저임금 등과 관련된 일을 했다.

최저임금 실태를 2004년에 최초로 조사했다. 당시 청소용역이나 학교 비정규직의 최저임금은 4천220원이었다. 사회 이슈화되면서 세상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 최저임금이나 여성노동자의 삶이 바뀌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작은 실천들이 모여진 것이다. 모두가 자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직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뭉치면 힘이 생긴다.”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해온데 비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여성노동자회나 양지지역자활센터나 마찬가지로 활동했던 일들이 사회적으로 관심 대상들이 아니었다. 드러내는 일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드러내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현재 하고 있는 마을 일도 마찬가지다. 드러내려는 것보다는 보는 만큼, 즐기는 만큼 행복이 찾아온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드러나는 것은 관심이 없다. 주민들과 함께 가는 길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또 다른 소망이 있다면.

“어떤 일을 하든 올인하는 스타일이다. 현재의 일이 나의 모든 것이다.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의 일에 스스로 지치지 않으면 좋겠다.

스스로 선택한 일인 만큼 주민들과 함께 오래도록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현재 상태에서 다른 소망은 없다. <여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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