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태어나는 자리, 교육으로서의 보육
믿음이 태어나는 자리, 교육으로서의 보육
  • 안산뉴스
  • 승인 2019.05.0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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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지난 4월 5일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3월부터 시행됩니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현행 ‘맞춤형 보육’ 제도가 폐지되고 기본보육과 연장보육으로 구분한 새로운 어린이집 운영체계의 도입입니다.

기존 ‘맞춤형 보육’은 0-2세 영아의 경우, 맞벌이 가정 자녀를 위한 12시간 종일반과 외벌이 가정 자녀를 위한 6시간 맞춤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12시간 이용이 가능한 종일반은 맞벌이 가정이나 구직, 장애, 임신, 한부모, 저소득층, 조손, 입원 등의 돌봄 필요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가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은 맞벌이와 외벌이 부모 사이의 갈등을 야기한다는 점, 맞벌이와 외벌이 가정에 대한 정부 차별이라는 점 등의 이유로 결국 4년 만에 맞춤형 보육제도가 폐지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4-5시까지의 기본보육을 바탕으로, 오후 7시 30분까지의 연장보육, 밤 10시까지의 야간 연장보육까지 가능한 형태로 재편됐습니다.

뇌과학에 따르면 뇌는 심장박동, 호흡과 같이 생존을 담당하는 뇌간으로 이루어진 파충류의 뇌,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간뇌와 대뇌변연계로 이루어진 구포유류의 뇌, 그리고 언어, 추상적 사고와 같은 고차원적 기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로 이루어진 신포유류의 뇌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세 종류의 뇌를 모두 갖춘 채로 태어나지만 시기에 따라 각 뇌의 부위는 활성화 정도가 다릅니다. 영유아기는 기억과 감정, 정서를 관장하는 구포유류의 뇌가 가장 활성화되는 시기입니다. 심리학자이자 교육자인 에릭슨 역시 영유아기는 신뢰, 자율적 의지, 주도적 감정이 주로 형성되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유아기는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기억을 만들고 이 축적된 기억이 한 개인의 주된 감정과 정서를 만드는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영유아가 하는 경험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수는 있겠으나 이 경험이 긍정적 감정이나 정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양육자와의 안정적 신뢰 관계가 필요하고, 이러한 관계는 양육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이나 관계의 여유 등을 통해 확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0-1세 영아에게 가장 좋은 교육적 환경은 시간, 관계, 노동 등의 여유로움이 확보된 양육자로부터 온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적어도 3명의 영아가 동시에 한 명의 교사로부터 돌봄을 받는 어린이집 교실은 한계가 있습니다.

국가가 키워주는 보육이란 은유가 되어야지 직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은유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보육정책은 부모를 한 인간의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그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부모’이기 보다 기업에 복무하는 ‘노동자’로 보는 관점이 강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노동자가 노동에 더 잘 복무할 수 있도록 노동자에 대한 서비스로서의 보육이 아니라 적어도 0-1세 자녀를 둔 부모가 노동자임에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보육 정책이 되어야 합니다.

생후 3개월부터 1, 2세 영아들이 오전 8-9시부터 오후 4시까지도 모자라 오후 7시 30분, 심지어 밤 10시까지 여러 양육자를 거치며 한 공간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어린 영유아들이 매년 발생하는 통학버스사고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 영유아의 안전을 담보로 한 통학버스에 태워질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0-1세 자녀를 둔 부모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영유아를 직접 등·하원 시켜 줄 수 있도록 기업이 양보해야 합니다. 적어도 0-1세 자녀를 둔 부모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양육기간동안은 단축근무를 할 수 있도록 기업이 양보해야 합니다.

부모인 우리가 요청해야 할 일은 내가 노동자로서 온전히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 아니라, 내가 부모로서 내 자녀를 온전히 양육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노동자에 대한 서비스에서 영유아에 대한 교육으로 보육정책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부모들의 목소리를 통해 시작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부모와 유아 교육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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