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겉과 속의 가난을 말하다
청년, 겉과 속의 가난을 말하다
  • 안산뉴스
  • 승인 2019.05.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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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산청년활동가

청년세대의 물질적 빈곤은 조금이나마 알려진 화두다. 취업이나 경제활동에 난항을 겪고 내 집 마련은 빚더미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세대에 대한 이야기들. 이러한 물질적 빈곤이 계속되면 정신적으로도 빈곤해진다는 사실은 어느 세대이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첫째로 ‘터가 없는’ 불안으로부터 태어난 마음의 빈곤. ‘내 어미아비가 언젠가 죽어 사라지면 난 집도 절도 없는 독거인이 되는 건지’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하고, 상금도 수입도 없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50만원에 경매한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평범한 사람’이라는 노래가사 중 일부다.

유명하고 ‘돈을 잘 벌 것 같은’ 청년들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랑의 행위는 작금의 현실을 퍼포밍한 작업물이자 현 세대에 바치는 가난의 트로피다. 참고로 경매된 트로피 가격 50만원은 이랑의 월세를 기준으로 잡은 것이라고 한다.

‘독거인.’ 일정한 거처 없이 고시원, 원룸 등을 전전하는 삶은, 마음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은 사회적 공동체와의 연을 맺기도, 유지하기도 벅차다. 한 달 살기, 하루 살아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미래의 일을 함께 고민할 수 있겠는가? 안정된 터의 부재는 관계의 부재를 야기한다. 공동체의 붕괴는 각자가 짊어왔던 좁은 집의 개수만큼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한 정서적 빈곤이 있다. 고용유연화로 하여금 ‘퇴사’가 대중적 밈(meme)이 되고 수많은 청년들이 직장을 옮기거나 이직준비를 한다. 직업을 통해 가치실현을 한다는 말은 꿈만 같은 일이고, 실상 현대인들에게 직업이란 생활비 마련을 위해 돈 버는 수단에 불과하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비정규 계약직, 시간제 일자리가 가득한 노동 실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기업이 사람을 부품 다루듯 대하고 쉽게 갈아치우는 구조 속에서 치워지기 전에 먼저 도망치는 것뿐이다. 나사처럼 교체되고 굴러다니는 삶에서 어떻게 자존감이 닳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즘은 ‘~해도 괜찮아.’라는 타이틀의 시리즈가 힐링 서적으로 발간되고 있다.

그 외에도 한층 더 납작해진 대중콘텐츠가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의 풍요가 닳고 닳아서 사람이 아플 때 죽을 먹듯이 ‘가볍고 무해한’ 콘텐츠로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게 지금의 청년세대가 아닌가 싶어서 슬프고 암담한 심정이다.

셋째로 정보의 바다 속에서 발생하는 지적 빈곤 또한 존재한다. 인터넷 활용을 자유자재로 하는 청년세대가 대부분이니 지적으로 빈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보가 대량으로 범람하다보니 그 속에서 정확한 정보, 양질의 정보를 얻기 어려운 현실이다.

SNS를 주로 하는 청년세대들에게는 맞춤형 콘텐츠가 제공되어 자신과 관련된 바운더리 밖의 정보를 수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정보가 바로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는 하나의 데이터, 점일 뿐이고 정보와 정보 간의 연결 관계를 알았을 때 지식이 되는 법인데 지금의 인터넷 서비스 구조 속에서 그게 쉽게 가능하지는 않고 일일이 찾아다녀야 한다.

지식을 제대로 축적하려면 차라리 책을 읽거나 정확한 정보수집이 생활화가 되어야 된다는 것인데 위에서 풀어본 청년세대의 삶 속에서 ‘정확한 정보’라든지 ‘지식축적’ 따위의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힌다는 것이다. 지적빈곤은 세상을 보고 접하고 느끼는 감수성을 메마르게 한다. 좁은 길을 보며 기어나가기 급급한 삶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존, 연명을 넘어선 삶. 그것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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