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관계 허물기의 중간에
-수필- 관계 허물기의 중간에
  • 안산뉴스
  • 승인 2019.05.15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필선 한반도문학회 회원

어머니는 다를 줄 알았다. 아버지가 무능해서 어머니는 어려움을 홀로 이겨내며 다섯 남매를 키웠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며느리에게는 딸처럼 다정하게 대해 줄 거라고 믿었다. 믿는 도끼가 언제나 발등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발등이 찍히는 날에는 처방하고 약을 발라도 여간해서는 아물지 않았다.

아들 하나에 누이와 여동생이 셋이라 나는 결혼을 포기하려고 했다. 넉넉한 집안도 아니고 부모의 생활 능력도 없어, 결혼하면 당연히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했다. 누이의 소개를 받아 아내를 만났다. 앞선 두 번의 맞선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극구 사양하다 떠밀리듯 나갔다.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당찬 여인이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해야 하는 달갑지 않은 자리였다.

극심한 처가의 반대에도 사랑이라는 힘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해주었다. 축복처럼 이내 아이가 생겼다. 어머니는 임신한 아내에게 극진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집안은 온통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의 첫 생일이 지나고 아장아장 걸을 때쯤, 어머니와 아내의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사소한 일도 누이와 여동생에게 알렸다. 누이는 그때마다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아내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들을 어머니가 돌보겠다는 조건으로 아내는 취직했다.

출근하고 아내가 없는 집에 어머니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적적해하실까 봐 늘 냉장고에 소주와 맥주를 사다 놓았다. 퇴근해 귀가할 때면 술에 취해 자는 할머니 옆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들로 아내는 눈이 뒤집혔다. 눈치도 없는 어머니 친구들은 끄떡도 하지 않고 매일 찾아왔고 저녁이면 집은 전쟁터가 되었다.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되면 나는 아파트를 서너 바퀴를 돌았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잘못으로 귀결되었다. 술을 왜 사다 놓았느냐?, 당신이 줏대가 없이 어머니 편만 드니까 친구들이 매일 찾아오는 거라며 아내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드라마에 방영되는 고부 갈등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하기도 했다. 아들의 일탈로 며느리의 속을 썩이는 날에는 어머니는 내심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꼼짝도 못 하고 쥐여산다며 나무라는 어머니를 달래기 위해 방문을 닫고 아내를 혼내는 척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어서 확실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노인잔치가 열리고 모범 며느리에게 표창을 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혼한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아무도 몰래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아내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와 어머니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부모님이 참석한 자리에서 아내는 상을 받았다. 퇴근하고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장모님께 전화했다. 감사하다는 말씀에 곁들여 시부모를 잘 모신 덕에 아내가 이런 대단한 상까지 받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니도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나면 은근히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아내 또한 예전 같으면 서운하다 했을 일도 웃음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다정하게 손을 잡고 목욕탕을 다녀오는 엄마와 딸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평소에도 지병으로 고생하던 어머니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어머니는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뇌병변 등으로 약을 달고 사셨다. 그러다가 저혈당으로 쓰러지며 골반 함몰과 손목이 분쇄 골절이 되는 중상을 당하셨다. 몸이 쇠약하여 골반 수술은 포기하고 손목만 수술했지만, 전신마취 후 회복이 되질 않았다. 회복이 되는 3개월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며 아내는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보살폈다. 딸이 많은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나와 큰 다툼을 한 후 아예 발길을 끊었던 누이도 어머니의 병간호에 적극적이었다. 자연히 그동안 소원했던 감정도 풀리고 가족은 하나가 되었다.

18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하며 웃고 울던 시간이 떠났다. 아내는 서글픔과 미안함과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서러움으로 연신 통곡을 했다. 눈을 감기 전 아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왼쪽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이리라. 따뜻한 말 한마디, 살가운 대화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사랑 고백이 하염없이 눈물로 흐른다.

“다시 결혼하면 부모님 모시는 집으로 시집갈 거야?” 내가 던지는 농담에 아내는 눈을 흘긴다. 아주 작은 일상도 편안히 누리지 못했던 지난 시간의 추억이 씁쓸하다. 빛바랜 사진으로 투영되는 그리운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