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라는 단 두 개의 틀
진보와 보수라는 단 두 개의 틀
  • 안산뉴스
  • 승인 2019.05.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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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전체성은 폭력적 측면을 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각각의 개체가 지니고 있는 실존적 특성보다는 개인들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특성을 일반화하며 각각의 실존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내기 때문입니다.

‘진보와 보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진보와 보수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두 개념에 대한 명확한 가치판단 또한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한 개인을 진보와 보수라고 하는 두 유형으로 구획하고, 그가 ‘속해 있다’라고 표현한 집단을 통해 그를 해석합니다.

이러한 질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 앞에 선 대상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의 행위는 진보적으로 표현될 것인가 보수적으로 표현될 것인가, 그에 따라 그는 자신과 같은 편인가 다른 편인가로 가늠될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가 누군가를 ‘진보’, 혹은 ‘보수’라고 부르는 순간 그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당신은 행동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군가를 ‘진보’, 혹은 ‘보수’라고 부르며 그들 사이에 금을 긋는 순간 그는 어떤 고통이나 실패를 가져온 원인에 자신은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것이며, 그가 누군가를 하나의 전체적 단어로 규정하여 부르는 순간 그는 타인의 무능력함을 비난함과 동시에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세상을 이분화하고 자기 아닌 타인에게 그 이분법 중 어디에 속하는가를 질문하는 이유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 이를테면 자신이 느낀 죄책감, 부끄러움, 뻔뻔함, 패배감, 자만심 등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대신, 타인의 것이라 단언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전체성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행위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투사로 볼 수 있습니다.

발생된 현상에 대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행위, 그러나 이미 증명하려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연루를 밝히는 행위에 다름이 아닙니다.

당신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질문에 답하는 행위 자체가 자기의 의견이나 의도와 관계없이 두 집단 중 하나에 소속되는 과정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비난이나 연루를 통해 발생된 현상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질문을 가장한 열등감의 투사 행위였으며, 자신에게 부여하는 면죄부, 타인에게 전가한 죄책감의 표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삶의 역사, 그 역사를 통해 경험한 관계들, 감정들, 이야기들, 서사는 당신이 질문한 진보와 보수 두 개로 구획될 수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란 이분법으로 손쉽게 한 시대의 역사, 한 개인의 역사를 판단하고자 하는 당신은 그 시대와 한 개인을 송두리째 부정한 셈입니다.

“당신은 진보인가 보수인가?”라는 갇힌 질문 대신 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을 당신이 내게, 내가 당신에게 질문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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