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대한제국의 덕수궁
-수필- 대한제국의 덕수궁
  • 안산뉴스
  • 승인 2019.05.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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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옥 (수필가)

구한말 격동의 현장 덕수궁은 근대국가를 실현해 보겠다는 꿈이 역력했다. 근대문명의 석조전(대한제국역사관)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건물만 봐도 우리 고유의 양식이 아닌 서양식건축물로 한번쯤은 가보고 싶도록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나는 친하게 지내는 아우에게, “우리 덕수궁 한번 구경 갈까? 근데 예약 관람이네, 예약 좀 한번 해볼래”라며 부탁했다. 아우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래, 언니, 일주일 전에 예약하면 돼” 그리하여 신록의 계절 오월을 맞이하여 한양에 입성했다.

오후 한시 관람예약이라 점심 식사부터 해야 했다. 아우는 식당까지 인터넷으로 알아 봤다고 나를 데리고 간다. 이른 점심이었지만 앉자마자 반찬이 셀 수 없이 나온다. 20첩 반상이다. 우리는 꼬막정식을 시켰는데 꼬막무침이 접시에 가득 담아 1인분 씩 나온다. 통통하게 살 찐 꼬막을 마음껏 먹었다. 가격은 1만3천 원으로 상차림에 비해 싼 편이다.

식사를 마치고 여유가 있어 평소에 걷고 싶었던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외곽을 돌면서 뜻하지 않게 고종의 길을 만났다. 영광스럽게도 고종황제와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도심한복판에 있는 덕수궁은 시민들의 안식처였다. 빌딩사무실 직원들이 점심식사하고 나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산책을 한다.

관람약속시간이 되어 석조전(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갔다. 해설가가 맞이해준다. 석조전은 서양 사람들이 직접 설계하고 직접 건설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 전통 궁궐은 편전과 침전이 분리되어 있지만 석조전은 건물 하나에 황제황후의 생활공간이었다. 벽에 새겨진 대한제국의 상징 황금 오얏꽃 문양이 눈에 선하다.

선조가 머물렀던 석어당 살구꽃은 덕수궁의 상징이다. 살구꽃이 필 때면 덕수궁 내부를 공개한다. 우람한 살구나무를 보면서 고궁과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꽃 무궁화가 놀랍게도 기원전부터 자생했다고 한다. 수 천 년을 이어온 무궁화가 순간 귀하게 느껴졌다. “석조전 내부는 미로로 되어 있어 나 따라오지 못하면 출구를 찾지 못합니다.”라고 해설사는 말했다. 그만큼 구조가 복잡하다. 그렇다. 왕을 폐현하는 일은 쉽지 않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대한제국시대가 아니던가, 어찌 되었든 의미심장한 대한제국을 넘나들고 왔다.

덕수궁관람 중 유심히 지켜본 것이 있다. 2층 황금계단 난간이다. 이 난간만은 그 시절의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고종황제, 순종, 영친왕, 이완용도 이 난간을 잡고 오르내렸을 계단이었다. 그리고 또 신중히 살펴보았던 게 있다. 마당 모퉁이에 있는 드므이다. 드므란 낮고 넓적한 독으로서 순수 우리말이다. 드므의 물을 담아 놓으면 화마가 물에 비친 자신을 보고 놀라 도망가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석조전 내부 1층은 대기실과 접견실. 만찬을 베푸는 대 식당이 있다. 2층은 황제의 침실과 황후의 침실, 거실, 서재 등이다. 황제침실은 고종의 침실로 계획했으나 고종은 함녕전에서 머물며 사용하지 못했다. 황후의 침실도 순헌황귀비의 침실로 만들었으나 준공직후 별세했다. 이처럼 대한제국 황궁은 건립되었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계획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다른 용도로 사용해 훼손돼 버렸다.

덕수궁은 월산대군의 집이었다. 임진왜란으로 갈 곳이 없어지자. 선조가 행궁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궁궐보다는 고택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석어당은 인목대비가 8년 동안 유폐 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함녕전에는 고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섬세한 무늬의 붉은 주렴을 보았다. 대왕대비가 어린 세자를 위해 수렴 청정할 때 가렸던 그 주렴이다.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은 1902년에 세워졌다. 그러나 1904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다. 그렇지만 보란 듯이 바로 일 년 후 중건되었다. 본래는 2층이었던 중화전이었으나 1층으로 복원되었다. 국권 없는 당시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중화전 내부 중앙에는 임금의 어좌가 있고 어좌 뒤로 일월오봉도 그림이 있다. 천정 중앙에는 살찐 황룡장식 두 마리가 있다. 올려보는 것만도 힘들었다. 황룡은 임금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한다.

지금의 3배였던 조선시대 덕수궁은 불에 타 거의 전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덕혜옹주가 다녔던 유치원 중명전은 덕수궁외곽에 동떨어져 있어 찾기 힘들었다. 중명전내부에는 을사늑약체결현장을 재현한 모습이 있다. 나는 이토히로부미와 이완용에게 곱게 보지 못하고 가자미눈으로 흘겨보았다.

나라는 있으나 나라구실을 못했던 슬픔의 대한제국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잘 살게 된 지금에 와서는 이념대립으로 정국(政局)은 안개속이다. 과거는 거울삼고 현재는 충실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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