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
  • 안산뉴스
  • 승인 2019.05.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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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테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다. 그는 아테네의 왕인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남겨 놓은 신표를 들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육로의 험한 길 대신 보다 덜 위험한 바닷길로 갈 것을 권하지만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의 모험을 떠올리며 험한 육로 길을 택한다. 아테네로 가는 도중에 테세우스는 사람을 죽이며 괴롭히는 이런저런 악당들을 만나게 되는데 테세우스는 그들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인 방식 그대로 그들을 처단해 나간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테세우스가 여정 중에 만난 마지막 악당이었다. 프로크루스테스 힘이 엄청나게 센 거인이자 노상강도였다. 그는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살면서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상대로 강도질을 일삼았다. 특히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었는데,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혀 놓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이곤 했다. 그러나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서 그 어떤 나그네도 침대의 길이에 딱 들어맞을 수 없었고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 역시 그가 나그네들을 죽인 방법대로 그를 그의 침대에 눕힌 후 침대에 맞추어 죽인다.

이 이야기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용어가 나오게 된다. 이 용어는 자신의 기준이나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 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 아집, 독단 등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 광화문에서의 집회를 마지막으로 3주간에 걸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장외 투쟁이 막을 내렸다. 황 대표의 장외 투쟁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각 당별로 극심하게 엇갈렸다. 그리고 각 당이야 본인들 입맛에 맞게 평가를 내렸다 하더라도 언론의 평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론사들은 황 대표의 이번 장외 투쟁에 대해 한 편은 황 대표가 명실공히 현 정부의 실정을 폭로하며 그 민낯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는 반면, 한 편은 시급한 민생 법안 처리는 도외시 한 채 차기 대권을 향한 자신의 주가 올리기에만 매몰된 정치쇼였다고 평가절하였다.

국민을 볼모로 한 정치권의 이전투구식 충돌과 보수와 진보의 진영 입장에 따른 언론의 보도 행태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평가는 다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평가의 기준이 매 사안마다 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슷한 성격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내가 했을 때에는 국민과 사회를 위한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남이 하면 국가와 사회에 위해를 끼치는 행위가 되어버리고 만다. 즉,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가 적용되는 셈이다.

기준은 비록 일정 부분 나에게 기울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토론과 협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안마다 그 사안을 바라보는 기준이 변한다면 거기에는 건설적인 토론과 협상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고 결국에는 각자의 목소리만 높이는 극한투쟁만이 남을 뿐이다. 우리 진영이 한 행동일지라도 그것이 평소 내가 주장해오던 기준에 비추어 벗어났을 때는 과감히 잘못을 인정하고 쓴소리를 해야만 한다. 그럴 때 국민들은 다른 사안에 대해 상대방을 향해 쓴소리를 하더라도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내로남불’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각 정당의 대표, 각 언론사 보도국에는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가 하나씩 놓여있는 듯싶다. 그 침대가 마음대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보이지 않는 장치를 고장 내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최소한 공정성은 몰라도 일관성은 확보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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