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국
돌멩이 국
  • 안산뉴스
  • 승인 2019.05.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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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갤럽이 조사한 143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복도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118위에 머물렀다. 많은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OECD가 발표한 공동체 지수 조사에서도 대상 36개국 중 꼴찌를 했다. 공동체 지수란 어려울 때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성인데 도움을 청할 이웃이 적거나 없다는 말이다. 씁쓸하기 그지없는 성적표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 빈곤율도 세계 1위다. 산업화를 이끌었고 가난을 극복한 세대였으나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독일은 100년 전에 이미 노인 정책을 시행하고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는데 우리와는 간극이 너무 크다. 워킹푸어(일하면서 소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가난한 사람들) 문제도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한 문제지만 정규직이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도 많다. 기본적으로 지출되는 보험료, 통신료, 공과금, 대출이자, 학비, 교육비 등을 제하면 윤택한 생활은 고사하고 생계유지도 쉽지 않다.

그러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고 이웃이니 공동체니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수치로 보면 사는 것이 너무 퍽퍽하고 고단하다. 그렇다고 혼자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필자가 소년이었을 때, 고단했으나 저녁이 되면 이웃들이 마당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던 기억이 있다.

배움이 짧고 일거리가 없어 부유한 사람이 없는 시골이었고 밤늦게까지 수다 떠는 날도 많았지만 시끄럽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다. TV가 있는 집은 기꺼이 이웃들에게 안방을 내주었고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 보던 기억도 떠오른다. 지금처럼 공동체 지수를 걱정하는 시대에 비하면 ‘가난한 날의 행복’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3가지 수필은 행복의 기준이 물질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공동체라고 함은 정서적인 유대를 말한다. 종교 활동을 하거나 취미, 전공 등을 통해 이뤄지는데 그중에 마을 공동체가 있다. 쉽지는 않지만 한번 만들어지면 주민이 참여하는 활력소가 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마을은 꿈터, 삶터, 일터, 학생들의 배움터,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반드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돌멩이를 넣고 국을 끓이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는 세 스님이 전쟁과 홍수, 가뭄을 겪은 어느 마을에 갔는데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힘겨운 삶에 지친 주민들은 외부 사람에 대한 불신과 함께 이웃도 의심할 정도로 각박했다. 스님들은 조그만 냄비에 돌멩이 세 개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궁금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스님들의 요청에 따라 솥을 가져오고, 양념, 채소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마음을 열고 자기 것을 내놓으니 맛있는 돌멩이 국이 완성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져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운 밤을 보낸다.

서로 나누면 행복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떠나면서 스님들은 말한다. “행복해지는 것은 돌멩이 국 끓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지요.” 국을 끓여낸 스님의 지혜도 돋보이지만, 솥을 가져오고 다양한 재료를 가져온 마을 사람들이 있었기에 맛있는 음식이 가능한 일이다. 어떤 재료를 넣고 끓일 것에 대한 숙의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돌멩이 국 작은 도서관 관장님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삶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 마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에 대해 고민했으면 하는 의미로 도서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이웃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행복지수나 공동체 지수, 빈곤도 마을에서 같이 고민해 보자. 이웃이 무어라도 들고 올 거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돌멩이 국을 끓여 보자. 그리고 나눠보자.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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