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 안산뉴스
  • 승인 2019.05.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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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미 안산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

2016년 5월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김군은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을 하고, 취업한지 7개월 차인 19살의 앳된 청년의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2인1조 근무가 원칙이었지만, 고작 6명이 49개 역을 담당하는 구조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사고가 난지 3년이 흘렀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하겠다던 처음의 약속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아이를 기르면서 책임감 있고 반듯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둘째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책임감 있고, 반듯하게 키우지 않겠다. 책임자 지시를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 산산조각 난 아이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웠다. 둘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미칠 듯이 후회된다.”(김군 어머니의 호소문 중)

우리는 김군을 보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딱 김군 나이였다.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도 세월호참사와 다르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 죽음으로 내몰아 놓고, 모든 탓은 ‘너의 잘못’으로 귀결되었고,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다. 처벌되지 않은 사고는 같은 사고를 만들어내고, 해마다 노동자 2천400여명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죽고 있다.

2018년 12월 10일, 또 다른 김군이 혼자 일하다 죽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다. 김용균의 가방에도 구의역 김군처럼 컵라면이 들어있었다. ‘김군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가 2018년 또 다른 김군을 만들어 낸 것이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붙은 포스트잇 한 장이 모두의 가슴에 울림을 주었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한 사회로 가야한다고 외쳤던 우리의 목소리를 우리가 잊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돈보다 생명이 중요한 사회로 나아가자고 약속했던 다짐들이 무색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너의 잘못이 아니야’를 만들어 냈다.

청년이 과로사로, 끼어서, 떨어져서 숨졌다는 기사가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온다. SNS에 공유를 하다가 ‘왜 또 죽어야 하나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아무렇지 않게 써내려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기사로 표현되지 않은 죽음은 또 얼마나 많을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하며 지낼 틈이 있던가?

죽음도, 사람도, 숫자가 아닌 생명이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한 생명이다.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외치지만, 정작 곁에 죽어가는 이들을,우리는 숫자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대로 규명하고, 제대로 처벌해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너의 잘못이 아니야.’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착한 아이였던, 공고를 가서 우선 취업해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던, 곰살 맞고 책임감 강했던 김군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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