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름에 장미를 내미는 것
서로의 다름에 장미를 내미는 것
  • 안산뉴스
  • 승인 2019.06.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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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지난 5월 대학가는 봄 축제가 한참이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학부의 학생들도 근 1년을 준비한 학술제를 잘 마무리 했습니다.

학술제를 시작하면서 학생들과 학술제의 성공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준비하고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술제가 끝난 후에도 학부로 묶여 있는 두 과가, 무엇보다 학부를 떠나 선배와 후배가 수고했다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릴 수 있는 것이 우리 학술제의 성공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그런 극적인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학과, 서로 다른 학년의 학생들이 하나의 공연을 위해 음악극을 기획하고 시간을 따로 내어 함께 연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변수가 생기고 계획이 틀어지고 그러다보면 개인의 스케줄까지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손해 보는듯한 불편함이 누적되고 익숙한 경쟁심마저 등장하게 되면 학과와 학년, 그 안에 존재하는 각각의 사정과 다름이 날카롭고 치열하게 부딪히게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배려, 협력과 같은 익숙한 단어들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지만 우리의 경쟁 문화에서 실상 배려와 협력은 경험이 아니라 교조적으로 이해되는 단어이기 쉽습니다. 경험과 동떨어진 교조적 단어는 교육현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데,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교육현장에서 재생산되는 것은 그 사회의 문화에 참여하고, 참여함으로써 문화를 이끄는 주체인 선생들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김현경은 그의 책 ‘사람·장소·환대’를 통해 경쟁하지 않고도 받은 만큼만 주는 교환이 아니어도, 누군가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도,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려는 환대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서로가 다양한 공간에서 실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사회에서 온 몸으로 경험하고 축적해 놓은 그동안의 가치관, 경쟁하고 독점하고 무리지어야 안심되는 마음을 일상에서 달리 적용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행위로 만들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와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실수했다는 것, 혹은 잘못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온전한 악이나 온전한 선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의 갈등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나와 당신이 만나 이룬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고통스럽게 할 분노와 갈등을 무의미하게 반복하기 보다는 우리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 또 다른 선택지에 대한 제안인 셈입니다.

시민에 맞선 무장경찰에게 꽃을 내밀던 장면이 이럴 때 꼭 생각납니다. 우리의 서로 다른 시간에 분노보다는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눈빛, 표정, 환대의 언어와 환대의 제스처가 놓이는 것, 그러니까 서로에게 먼저 꽃을 내밀 수 있길, 그런 용기가 우리에게도 있길 희망해 봅니다.

서로의 갈등에 대해 받은 만큼 돌려주는 분노의 결의가 아니라 장미와 키스와 포옹으로 늘 예측 가능했던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전개하는 선택도 가능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인 건 확실합니다. 제게도 늘 도전입니다.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고, 그래서 없는 셈 칠 순 없다고 철학자 데리다는 말합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에 닿을 수 없다고 별을 없는 셈 칠 수는 없는 것처럼. 가능성을 믿는다면 닿을 순 없지만 지향으로 삼고 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갈 순 있습니다.

반쯤 성공한 우리 학생들의 연대에 박수를 보내고,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을 지향 삼아 앞으로도 뚜벅뚜벅 걸을 그들의 노력에 격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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