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VS 운동
사업 VS 운동
  • 안산뉴스
  • 승인 2019.06.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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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마을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공모사업이다. 마을계획을 진행했거나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된 곳은 대부분 공모사업에 참여해 평가받고 예산을 활용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로 삼는다.

최근 공모 사냥꾼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됐다. 행정이나 중간지원조직에서 추진하는 각종 공모사업에 족집게 과외처럼 핵심 내용을 채워 선정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부족한 활동성을 스토리텔링으로 과하게 포장하여 평가받는 것이다.

필자도 심사위원으로 여러 차례 심사하면서 공동체가 안 보이고 주민 스스로 해나갈 역량이 보이지 않는데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구분하기 힘든 ‘전문가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씁쓸하기도 하다.

일동의 경우 마을계획 후 매년 20개 가까운 공모사업을 진행 중이고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공동체가 많이 생겨났다. 마을에 공동체가 많아지면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것으로 좋은 신호이고 선순환의 모델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공모가 끝나면 사업도 동력을 잃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산에 익숙하고 예산을 쓰기 위해 만들어낸 사업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예산이 없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사업적 마인드로 본다면 수지타산에 맞춰 얻는 것이 있어야 하고 이익을 내기 위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계획을 세워 짜임새 있게 지속적으로 경영한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마을은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운동력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운동은, 열정이고 멈추지 않는 에너지이자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계몽(브나로드)과 같은 의미다. 간혹, 프로필을 만들기 위해 마을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묵묵히 일하는 다수의 주민은 순수한 마음으로 마을을 놓고 고민한다. 열심히 활동하고 그에 따른 결과가 생기는 것만큼 좋은 사례는 없다.

힘을 쓰지 않으면 자전거를 움직일 수 없고 걸음을 뗄 수도 없는 것처럼 의지를 가지고 역할을 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만들어주는 마을의 에너지는 무엇일까! 필자는 모임, 공동체, 협의회, 다양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마을계획, 주민참여예산도 잘 모이는 운동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스스로 분과와 의제를 정하고 실행함에 있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마을 민주주의, 자발적 참여가 진정한 의미의 운동이다. 필자는 강연을 다니면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는 중이다.

광주광역시의 예술가들이 모인 곳에서 마을의 이야기를 담는 주민합창단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드렸는데 그대로 이루어졌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큰소리와 작은 소리,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굵은 소리와 가는 소리가 만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주민은 간식을 제공하고 또 어떤 주민은 피아노를 기증하셨다.

안산 일동에 패밀리100인합창단이 있다면 전라도 광주에는 김혜일 선생님이 이끄는 아름다운 합창단이 있다. 벌써 50명을 넘겼다니 조만간 멋진 공연을 하지 않을까 싶다. 수원에 강연을 갔을 때는 재능을 나누면 마을이 얼마나 좋아지는지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년퇴임하신 교장 선생님이 제2의 인생으로 행복하게 즐기고 계신 포크댄스로 자격증을 취득하셨고 매주 토요일에 주민을 모아 군무(群舞)를 시작하셨는데 벌써 수십 명이 모인다는 것이다.

사업이라면 즐겁지 않았을 일에, 함께하는 운동으로 접근하니 신명 나는 공동체의 축제가 된 것이다. 운동은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이자 소소한 민초들의 몸짓이다.

의례적인 사업들은 대부분 동원에 의존하지만 운동은 철학을 가진 자발적인 참여이고 팀플레이다. 전국적으로 자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역량을 길러가고 있으니 머지않아 주민들의 운동이 들풀처럼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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