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하는 청년여성들
삭발하는 청년여성들
  • 안산뉴스
  • 승인 2019.06.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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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산청년활동가

친구가 삭발을 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4년 간 여성(특히 청소년, 청년) 그리고 여성 그 주변의 삶의 변화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긴 머리를 자르고, 화장품을 처분하고, 색조화장품을 조금씩 안 쓰게 되는 것부터 맨얼굴을 되찾는 것까지. 그리고 당연하게 돌아오는 탈코르셋을 시도하는 여성들에 대한 여성혐오. 이에 핍박받고 저항하며 투쟁하고 있는 여성들이 우리의 주변에, 우리의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탈코르셋을 지지하지만 막상 주저하게 되는, 여성혐오적인 현실에 타협하고 꾸밈노동을 하고 마는 여성들도 다수 존재한다. 왜 주저하게 되는가? 그들은 이미 봤기 때문이다. 머리가 짧거나 삭발을 한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사실 페미-붐 이전에는, 여성의 삭발은 ‘병을 앓고 있나?’ ‘모발 기부 운동에 참여했나?’ 등의 세세한 서사를 요하는 작은 의문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지금의 극악한 반응이 신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에는 여성혐오가 없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해 본다. 당시 여성의 삭발에는 위에 나열된 것만 같은 서사가 필요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여성혐오적인 세상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7080 세대 그 이후에도 대중문화에서 ‘이별 후 긴 머리를 자르는 단발-숏컷 여성’, 이미지가 잘 팔리지 않았었나? ‘이별, 질병, 직업적 특성’ 등 여성 커트에는 이유가 꼭 필요했다.

남성 삭발은 어떤가? 어떨 때는 나라를 수호하는 군인의 이미지로, 어떨 때는 친근한 대머리 이웃 이미지로, 삭발에 가까운 짧은 스포츠 컷도 요즘의 남성들이 간혹 하는 머리스타일이다. 남성의 삭발은 서사가 먼저 있지 않고, 존재 이후 각종 이미지와 서사가 그 뒤에 따라온다.

반대로 여성의 삭발은 서사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헤어스타일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지만 많은 여성들은 이제 그것을 탈피하려고 한다. ‘내가 삭발을 하는 것에는 이유(Story)가 없어’ ‘내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 ‘그냥 내가 하고 싶으니까 자르고, 그냥 벗는 거야.’ 더 이상 여성들이 머리가 짧다고, 편한 옷을 입는다고, 브라를 입지 않는다고, 남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들 ‘탈코르셋’을 수행하며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 화장을 하는 것, 머리를 기르고 치장하는 것이 자율적 선택이며 코르셋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선택지 중에 하나라면 당신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 ‘투블럭’, ‘삭발’ 등이 당신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게 놓여있어야 한다. 그래서 삭발을 할지, 세미단발 컷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마치 음식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듯이 평등하게 저울질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아주 소소한 탈코지만, 예전에 내가 투블럭 컷을 결심하고 미용실에 갔을 때도 소통에 혼선이 있었다. 나의 선택지에는 ‘투블럭 컷’이 있는데 미용사의 선택지에는 여성의 ‘투블럿 컷’이 없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미용사 분이 소통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으로 ‘그럼 남자처럼 잘라드릴까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장소에서 나는 내 머리를 하지 않고, 남성의 헤어컷을 흉내 낸 사람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긴 머리를 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것인지, 사회로부터 습득한 것인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이의 말에 따르면, ‘가장 자유롭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가장 노예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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