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주도의 통일담론을 만들겠다”
“시민주도의 통일담론을 만들겠다”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9.06.12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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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종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

주요프로필

-6.15안산본부 상임대표

-행동하는 양심 상임대표

-우리함께 다문화지역아동센터 대표(안산)

-(사)안산희망재단 이사(배분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안산)

안산지역에 시민단체가 전무하던 1994년부터 시민단체 활동을 해온 인물이 있다. 현재의 윤기종(65) 사단법인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이다.

윤 이사장은 한국정수공업(주) 전무이사를 비롯 ㈜휴텍플러스 대표이사, ㈜안산레이크타운 대표이사, 안산YMCA 이사장 등의 기업 대표와 시민단체장을 두루 맡아 지역에서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현재도 6.15안산본부 상임대표와 함께 행동하는 양심 상임대표, 우리함께 다문화지역아동센터 대표(안산), (사)안산희망재단 이사(배분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안산) 등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안산을 새롭게 만들자는 사명감으로 25년 전 시작한 시민단체 활동이 현재까지 이르게 했다는 윤 이사장은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사단법인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이 현재 모범사례가 되면서 전국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귀띔한다.

오랫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해 왔지만 드러내지 않는 성격상 지역 사회 시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기회가 주어질 경우 내년 총선에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를 다진 윤 이사장을 현장 인터뷰했다.

-안산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사회에 진출해서 1980년대 초 서울 소재 한국정수공업(주)에서 근무를 시작해 회사가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한국정수공업은 원자력과 화력발전소 수처리 설비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링 회사다. 한국정수공업은 내실 있는 회사였다. 당시 대기업보다 근무여건이 좋았다.

그 때가 1981년이다. 벌써 38년이나 됐다. 안산에서 거주한 세월이 38년이다. 자녀들이 안산에서 초·중·고를 모두 다녔다. 한국정수공업과의 인연이 곧 안산과의 인연을 맺게 된 단초가 됐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기 전 기업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공장을 반월공단으로 이전한 한국정수공업에서 18년 동안 일했다. 한국정수공업에서 말단으로 시작해 사무 관리와 수출입업무를 맡았었다.

1980년대 초 한국정수공업에서 무역업을 담당하면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 자금으로 추진하는 보령화력발전소 설비공사 국제입찰을 수주했다.

그 당시 보령화력발전소 기자재 국제 입찰을 수주하면서 IBRD 차관 자금으로 달러 결재를 받아 회사가 수출로 인정받았다. 한국정수공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저에게도 행운이 뒤따랐다. 특진에 특진을 거듭했고 입사 11년 만에 관리 상무이사가 됐다. 40세 젊은 나이에 이사가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IMF가 찾아왔을 때 회사가 경영상 문제가 없는데도 최고경영자가 직원 전체 30% 임금 삭감과 직원 정리해고를 지시했다.

회사 방침이 알려지며 안산YMCA 강당에서 직원들이 농성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 당시 직원 7명과 함께 일말의 책임감으로 동반 퇴사했다.

퇴사 후 한국정수공업 오너들이 투자해줘 기술자와 함께 중계기 이동통신설비 벤처기업을 10여년 정도 운영했다. 이후 한국정수공업에 2012년 전무이사로 재입사해서 짧은 시간 다시 몸담았고 ㈜안산레이크타운 대표이사로도 일했다.”

-안산YMCA 이사장도 역임했다.

“안산YMCA 창립 이사다. 안산지역이 1990년대 초만 해도 시민단체가 전무했다. 당시 안산YWCA, 경실련 등이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안산YMCA는 최진호 초대 이사장을 비롯, 명석상, 윤석규, 오창록씨 등과 함께 뜻을 모아서 안산을 새롭게 만들자는 사명감으로 창립했다.

안산YMCA 이사장은 임기가 2년이다. 6대 이사장을 맡아 연임하며 4년을 봉사했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사단법인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태동 취지는.

“한겨레통일포럼은 2000년 6.15공동선언이후 시민들의 지향을 담아 안산통일포럼으로 같은 해 8월 출범했다.

안산통일포럼은 통일담론을 대중적으로 형성하고 시민들의 평화통일 지향을 실천하기 위해 결성했다.

안산통일포럼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통일운동은 물론 더욱 많은 시민과 함께 하는 평화통일사업을 위해 2017년 8월 현재의 한겨레평화통일포럼으로 명칭을 바꾸고 통일부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승인받았다.”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은 어떻게 운영되나.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은 기본적으로 이사장과 이천환 상임대표, 부대표 7~8명, 이사 40~50여명을 포함해 CMS 후원자 등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사단법인이다.

안산통일포럼으로 출발해 한겨레평화통일포럼으로 명칭을 바꾸며 사단법인으로 전환했지만 출범 이후 매년 2회씩 평화통일지도자과정 아카데미를 개설해 운영해오고 있다.

평화통일지도자과정은 현재 28기가 개강중이다. 11강으로 이뤄진 이 과정은 매년 2회에 걸쳐 개강해 수강료를 내고 학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은 한반도 평화통일 시대에 지역사회 지도층들이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 평화번영을 꾀하고 지식과 전략, 비전을 높이는 장을 만들기 위해 개설했다.”

-지역사회에서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의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엄청난 기간 동안 분단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서서히 자주, 평화통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통일은 우리의 미래다. 통일은 우리의 희망이다. 이제 통일은 질곡의 역사를 넘어 당위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외세의 간섭과 냉전의 굴레를 뿌리치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시대로 가야 한다.

통일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시민들이 통일담론을 만들고 힘을 모아야 한다. 안산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평화통일포럼이 모범사례로 떠오르면서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통일교육을 위한 통일포럼이 전주, 청주, 구미, 시흥 등에서 생겨나고 있다.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이 타 도시에서 만드는 통일포럼의 성공을 위해 자료제공과 함께 강사 소개 등의 전반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미 사명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6.15안산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다. 역할은.

“6.15선언은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마지막 날 발표한 선언이다.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선언하고 남북의 통일 방안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경제협력과 교류 활성화에 합의한 것이다. 당시 정상회담은 1948년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 대표가 만난 첫 번째 회담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한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역할은 지역사회에서도 평화, 자주, 민주적인 통일의 취지를 살려서 실현해 나가자는 것이다. 40여개 관내 시민단체가 가입돼 있다.

40여개 시민단체의 대표단이 있고 그 중에서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교류가 가능할 때 대북지원 사업을 해왔고 6.15걷기대회도 열어왔다.

올해는 안산문화광장에서 615명이 참여해 한반도 지도를 그리는 퍼포먼스 등의 ‘안산시민통일문화제’를 갖는다.”

-‘행동하는 양심’도 이끌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정책과 평화 가치는 제 인생의 스승이다. 어린 시절부터 후광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존경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하는 슬로건이다. DJ를 존경하는 이유가 통일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40년 전 주장한 통일정책이 현재도 맞아 떨어진다.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 세 가지다. DJ의 으뜸 가치는 ‘평화’다.

지난해 안산에서 김대중 평화캠프에 40여명이 다녀왔고 올해도 52명이 참여할 정도다. 지역사회에서 행동하는 양심인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함께 다문화지역아동센터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우리함께 다문화지역아동센터는 안산YMCA와 안산YWCA, 의제21, 이동 소재 하늘품교회가 함께 만들었다.

이 단체를 만들 당시 초등학교 1~2학년이 현재 고등학생이 됐다. 기업에서 품질관리를 할 때 규칙 중에 1대 10대 100의 법칙이 있다. 설계단계에서 1이 필요하다면 생산단계로 넘어갈 경우 10의 노력이, 유통단계로 가면 100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청소년문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1만 신경 쓰면 되지만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성장하면 100이나 1천의 노력이 뒤따라도 어렵다. 다문화도시라고 입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사)안산희망재단에서 배분위원장(이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산희망재단 출범 당시 발기인 대표를 맡았었고 현재 이천환 한사랑병원 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희망재단은 지방정부나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주는 사단법인이다.

희망재단 모금위원장은 문옥선 BM산부인과 이사가 맡고 있고 배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사단법인은 모금과 배분이 함께 잘 운영돼야 한다. 모금도 어렵지만 배분이 정으로 흘러 잘못되면 단체가 무너진다.

배분위원장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그동안 불미스런 일이 없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현장에 찾아가서 확인하고 집행한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기업 경영도 꾸준히 해왔는데.

“한국정수공업에서 일하다가 퇴사해서 통신설비 벤처기업을 경영했다. ㈜휴텍플러스 대표이사와 ㈜안산레이크타운 대표이사를 거쳐 한국알카리수(주)에 참여했다.

개인 사업은 현재 잠시 쉬고 있는 상태다. 앞으로 북한과의 교류가 이뤄질 경우 금강산 여행 재개에 대비해 통일운동과 연관 있는 여행업을 해보려고 고민 중이다. 통일운동을 하면서 평양을 8회 방문한 경험이 있다. 단지 돈을 벌기보다는 통일에 기여해보기 위해서다.”

-지역에서의 사회단체 활동이 많다. 어려움은 없는지.

“시민단체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더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평화통일포럼을 운영하기 위해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경제를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은 정치외교를 전공하고 논문만 남겨 놓고 있다. 좌파, 우파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좋겠다.”

-그동안 활동한 내용 중에서 보람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통일포럼을 만들어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개성공단 나무심기와 의약품 보내기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정권이 바뀌면서 2008년부터 11년 정도 맥이 끊겨 못가고 있어 안타깝다. 통일포럼 창립이 가장 보람 있는 일중 하나다.

희망재단 참여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전국의 사단법인 중에서 서울, 성남, 부천, 안산이 성공한 재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민간재단이 지역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참여자 모두의 힘을 합쳐서 가능한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나 좌우명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는 기독교인이다.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다. 범사에 감사한 생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현재의 모든 입장을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사회적으로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자’이다. 고상한 글귀로 말하자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聽天命)’이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총선 출마설이 있다.

“안산은 지방자치 이후 후퇴하는 도시가 됐다. 정치 지도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안산은 위대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전국 최초도 많은 도시다. 지방도시도 중앙과 힘을 합쳐야 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년 4월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안산단원을 선거구로 출마할 계획이다. 물론 당내 경선을 치러서 후보가 된다는 전제에서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현 시대는 국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있다. 그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정치권 밖의 인물이 들어가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결심하게 됐다.” <여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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