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빚진 오늘
당신의 삶에 빚진 오늘
  • 안산뉴스
  • 승인 2019.06.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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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포르투갈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 된 건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때문이었습니다. 10년 전 처음 읽었을 땐 리스본이란 낯선 공간에 매혹됐습니다. 다시 읽으니 그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네요.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항로를 개척하며 대항해의 시대를 열었던 15세기의 영화를 뒤로하고 1580년부터 1640년까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무려 60년간 받았던 곳, 독립한 후에도 산업화,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리며 외부로는 주변 강대국들의 경제 식민지로, 내부로는 독재자 살라자르로부터 1932년부터 1968년까지 약 36년간 지배를 받았던 곳.

세상의 끝이라 불리던 이베리아 반도의 작은 국가 안에서 살아왔던 역사의 공식이 낯설지 않습니다. 국가의 독립과 개인들의 자유를 위해 많은 이들이 사적 삶 대신 저항 운동에 투신했던 날 선 시대의 한복판에서 지극히 일상적 삶을 잃어야 했던 이들의 삶. 그 수많은 개별적 부서짐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중요하게 인용되는 글이 있습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입니다. 페소아는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라고 불립니다. 포르투갈 언어권에서는 작가들이 사랑한 작가로, 많은 작가들이 그로부터 문학적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생전에 작가로 활동하지 않았으나 사후 그의 방 궤짝에서 엄청난 분량의 원고더미가 발견되며 그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낱장으로 된 원고를 분리하고 묶는 작업은 그가 죽은 지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1893년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했으니 주변 외세의 힘에 휩쓸리는 불안한 국내 정치와 독재의 낌새 안에서 세계와 그 일부일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작가의 민감하고 예민한 사유가 글로 표출되었을 겁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의 책 ‘불안의 서’를 사랑하는 데에는 일상의 균열, 그 균열로부터 느껴지는 연약한 개인의 불안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닿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의 5월과 6월도 저물어 갑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일본의 식민지배지로써의 삶, 외세의 힘겨루기에 희생된 국내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결국 전쟁, 이후의 민주화 운동까지 1백여 년 동안의 역사적 시간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건 과거의 혼란이 여전히 현재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겠지요.

정치적 논쟁 속에 2009년 5월 전 대통령이 서거했고,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1987년 6.10민주항쟁과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라앉은 세월호에 묻힌 실종자들을 수색하고 수습한 김관홍 잠수사의 기일이었던 지난 6월 17일. 그리고 지난 23일, 용산참사에 참여한 철거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 시대와 한 민족에게 화인처럼 새겨지는 커다란 역사 뿐 아니라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도 결국 수많은 개인들이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로부터 승인된 국가폭력의 자기 확신이 한반도의 작은 땅, 그리고 저 멀리 이베리아의 작은 땅에 있는 개인들에게 모두 맞닿아 있습니다.

페소아가 100년 전 리스본을 여행하고 쓴 여행 책자는 오늘도 리스본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고 합니다. 저항의 세대를 살아가느라 개인의 일상을 잃어버린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프라두, 자유와 존엄의 결핍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 한 작가 페소아, 거대한 시류에 개인적 삶을 휩쓸려 버린 과거와 오늘의 사람들. 그들 또한 우리가 어느 길로 걸어야 하는지 지향의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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