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쿠르고스를 생각하며
리쿠르고스를 생각하며
  • 안산뉴스
  • 승인 2019.07.0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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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르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하는 이른바 3차 페르시아 전쟁을 도발했을 때,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테르모필레 골짜기에서 고작 300명의 병사를 이끌고 페르시아군과 맞서 싸우다 운명을 마감하는 전설을 만든다. 이 이야기는 ‘300’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스파르타 병사들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임전무퇴의 용사로 길러지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데 현대에서는 이를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도입해 스파르타를 그리스 최강의 도시 국가로 만든 사람이 리쿠르고스이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왕자 중에 하나로 태어났는데,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은 그의 이복형이 즉위한 후 얼마 안 되어 갑작스럽게 죽자 그는 차기 왕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이복형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형수가 8개월 후에 아기를 출산하자 그는 바로 왕위에서 물러나 버린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해 일어날 수 있을 불상사를 우려해 아예 조국을 떠나 크레타, 이오니아 등지를 떠돌며 망명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이후 그는 귀환을 간절히 바라는 스파르타의 시민들과 왕의 초청을 받아들여 조국으로 돌아와서는 스파르타의 정치제도와 입법 체제를 새로이 구축하기 시작한다. 먼저 왕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원로원 제도를 도입했고 이어 금, 은으로 만들던 주화를 값싸고 무거운 철로 만들도록 했다. 철로 된 화폐는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못쓰게 될 뿐 아니라 무거워서 환금성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사람들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스파르타의 모든 소년들은 ‘아고게’라 부르는 혹독한 전사 훈련을 받도록 했으며, 남녀의 차별을 없애고 여성들도 남성과 같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추기 위한 훈련을 받도록 했다. 이외에도 모든 시민이 신분에 상관없이 공동으로 같은 종류의 검소한 음식을 먹도록 했다.

리쿠르고스의 개혁은 한마디로 많은 물질을 소유하거나 공직으로 출세하는 일이 자랑이 아니라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명예를 얻는 그런 이상적인 국가를 만드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스파르타가 그리스 국가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쿠르고스의 위대성은 죽음으로 보여준 그의 마지막에 있었다. 그는 스파르타의 제도에 아직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며 아폴론신전으로 신탁을 받으러 길을 나선다. 그런데 그는 길을 떠나기 전 스파르타의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신탁을 받고 돌아올 때까지 현재 시행 중인 법을 절대 수정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했다. 그는 이후 아폴론신전에 도착해서 자신이 제정한 법이 좋은 법이며, 스파르타는 그의 체제를 지키는 한 강력한 나라를 유지할 것이란 신탁을 받고는 그 신탁을 조국에 보냈다. 그는 자신이 떠나올 때 시민들을 그들이 한 맹세로부터 놓아주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는 음식을 끊고 외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현재 양승태 대법관을 비롯 사법농단에 관여한 여러 법관들의 재판이 한창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나라에 끼친 행위가 어떤가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법관으로 재직할 때는 돌아보지도 않던 법의 자구들을 트집 잡아 재판을 한없이 늘어뜨리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필자는 이들의 구차하고도 치졸한 행태를 보면서, 왕이라는 권력마저 내던지고 오직 조국의 융성을 바라는 마음으로 법의 수호를 위해 타향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을 법과 함께 살았다는 양승태와 일단의 무리들, 이들에게 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욕망을 위해 법을 사적 용도로 사용했던 사법 농단 세력의 이름 앞에, 2800여 년 전 법의 수호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리쿠르고스를 떠올리는 것은 행여 그에 대한 모욕은 아닐는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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