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생각하기 /거침없고 시건방진 친구
세상 생각하기 /거침없고 시건방진 친구
  • 안산뉴스
  • 승인 2019.07.03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학창 시절 역사나 기행에 관심이 많던 나는 수업이 없는 날이나 방학이 되면 경향 각지를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지도에 그려진 양수리나 대성리로 엠티를 주로 갔지만 서민들의 정취가 눅진히 배어나는 그러나 좀은 불편하고 소탈한 소도시 장터나 축제를 더 찾아갔다. 고찰과 능을 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얀 메밀꽃 향기가 온 고을로 교교히 퍼져가는 봉평 물레방앗간, 동백꽃이 숨 막히게 붉은 오동도 풍경, 진주라 천리길 개천예술제의 촉석루 정자, 어린 왕이 비명에 간 영월 청령포는 여러 번 발길을 불렀던 곳이다.

그런 여행길에 함께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S다. 꺼부정한 키에 그림을 무척 잘 그리던 녀석이었는데 특강 교실에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나 텄던 친구다. 솔깃한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던 그를 ‘맘속에 두고 있어 행복해지는 지인’ 두 번째 인물로 상정해서 만나본다.

그를 주목한 이유는 두 가지, 우선 돋보이는 역사 인식이다. 녀석은 영월 장릉에 들러 열일곱 단종이 죽게 된 배경을 거의 변사 수준으로 들려주었고 천오백년 선운사 경내에 들어서는 ‘사사불공하면 처처불생’이니 행·불행의 근본은 마음에 있는바 천하에 지극정성을 다하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도 남도 길에 선운사를 자주 찾는 것은 그가 남긴 흔적 때문이다.

이 사람은 단순히 팩트를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팩트와 팩트 간극에 숨겨져 있는 것이, 요즘 신식말로 하면 ‘인문학적 배경’이 중요하다며 그것을 꺼내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중세사, 근세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조는 정말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되었는가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했으며 단종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사가 아닌 교살 당했다는 것을 이유와 증거를 대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단종이 사약 마시고 윽윽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극 드라마는 허구라는 것이다. 단종애사는 친구로 인해 한층 비통해졌고 도솔산 선운사 미명은 그의 해설로 푸르름을 더했다.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고 통찰력 있게 해석하려는 친구였다. 지금 나의 뇌 속에 있는 ‘알아두면 쓸 때 있는 잡학’의 일부는 친구 것이다.

그가 눈에 띄었던 이유 또 하나는 거침없는 비판이었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신선했다. 모름지기 예술제나 문화제라 함은 생성 연유가 있어야 하고 그것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전시에 급급하고 끝나면 그뿐이라며 싸잡아 비판했다. 세상 많은 일들은 그의 분석 앞에서 온전하지 못했으며 우리가 보기에 멀쩡한 인물도 그의 논리를 거치면 지탄받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분석과 비판이 어우러지자 이 학생은 그걸 반항으로 연결시켰다. 자신의 견해와 다르면 친구나 선배에게도 반항했고 교수들한테 대들었다. 이 아이가 좀 시건방지구나 싶기도 했지만 식견 짧은 나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깊은 곳에 사람을 사랑하는 애정이 있고 처신이 실겁다는 것을 안 것은 두어 학기 쯤 지난 뒤였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그의 ‘반항’을 이해할 수 있었다.(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