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누리과정, 놀이에 대한 철학을 다시 사유하기
개정누리과정, 놀이에 대한 철학을 다시 사유하기
  • 안산뉴스
  • 승인 2019.07.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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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몇 주 전 학회에 참석해 개정누리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개정누리과정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의 놀이 비중을 높이고 교사들의 사전 활동계획안 대신 평가에 강조점을 두는 것입니다. 개정누리과정이 주목한 지점은 현재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유아들의 자발적 놀이가 지나치게 축소되었다는 것, 활동계획안이 놀이를 축소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3~5시간을 기준으로 편성된 기존 누리과정은 유아들의 놀이를 실내놀이와 실외놀이로 구분하고 자유선택 중심의 실내놀이를 하루 1시간, 바깥놀이인 실외놀이를 하루 1시간 이상 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실상 이러한 권유가 누리과정에 제시된 데에는 실내놀이 1시간, 실외놀이 1시간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유아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하루 적어도 2시간은 자유로운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리과정이 만들어지고 8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최소한의 장치는 하루 일과 중 자유선택 1시간, 실외놀이 1시간으로 일종의 규범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습니다. 자유선택놀이조차 그 달의 주제와 영역에 갇혀 자유로운 놀이가 되기보다는 분절된 활동이 되었다는 비판 또한 존재합니다.

기존 누리과정은 1년의 교육과정을 월 별로 나누어 12개의 대주제에 따라 월간 계획, 주간계획, 일일계획을 제공합니다. 기존 누리과정에서 제시하는 일일계획안의 경우 각 활동의 목적과 목표, 상호작용 시 교사의 질문까지 구체적으로 제공하며 교수활동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기존 누리과정이 도입되던 시기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빈약하여 사설 월간지에서 제공하는 계획안을 교사들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진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기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만 3세에서 만 5세 유아를 위한 통일된 국가수준의 유아교육과정을 제시했다는 것은 유아교육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차지하며 기존 누리과정기간 동안 한국의 유아교육이 체계화되며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지중심의 교육문화가 유아교육까지 번진 현재의 사회문화에서는 교사의 사전 계획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활동중심 교육이 학습 활동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육기관과 교사 또한 굳건하게 유아교육 현장에서 교육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 계획된 교사 중심의 활동 계획은 놀이를 통한다 해도 학습으로 전환되기 쉬운 것 또한 유아교육학자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이기도 합니다.

개정누리과정은 이러한 사회상이 점진적으로 유아교육현장에 투입된 상황에서 유아의 자발적 놀이에 더 큰 방점을 찍고 ‘놀이중심’이 아니라 ‘놀이’를, 교사중심의 사전 활동계획이 아니라 유아의 자발적 놀이에 대한 사후 평가를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제안한 셈입니다.

각각의 것들에는 각각의 것들이 최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고유한 시간이 있습니다. 기존 누리과정은 놀이중심 유아교육의 기틀을 잡는데 훌륭히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유아들의 놀이보다 더 커진 놀이중심 활동, 위험과 안전의 논리가 자유로운 놀이를 오히려 억압하는 장애가 되기도 하는 현 시점에서는 유아교육의 본향인 유아들의 놀이에 대해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개정누리과정에서 교사의 역할, 대학에서의 예비유아교육 등 개정누리과정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유아교육의 본질은 놀이라는, 유아교육은 유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유아교육의 철학을 다시금 생각해 보자는 제안, 개정누리과정의 의미는 바로 그 지점에 있을 것입니다. 개정누리과정이 오늘의 결핍을 메꾸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유아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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