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정원과 골목 정원
가로수 정원과 골목 정원
  • 안산뉴스
  • 승인 2019.07.09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정원을 만들면서 가장 우선순위였던,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가로수와 골목 정원이다. 시작하는 지점에서 끝 지점까지 43개의 가로수 정원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꽃밭마다 각자 주인이 있고 사연도 있으며, 되도록 정원에서 가장 가까운 주민들이 관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콘크리트 건물에 살면서 마당도 없고 여유도 없는 일상에 익숙한 주민들에게 정원이 생긴다는 것은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다. 우리는 정원마다 번호를 붙이고 잘 돌봐 달라는 안내문도 붙였다. 어느 정원은 사촌지간 자매의 아직 취학 전인 꼬맹이들이 분양을 받았는데 정성껏 물도 주고 “아무개네 정원”이라는 예쁜 팻말도 붙였다.

등하교 시간 정원에 서서 꽃과 이야기를 나누며 쓰다듬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행여 쓰레기가 있으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치우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면 꽃이 숨을 못 쉬어 아야 해요’라는 문구를 붙인 곳도 있었다. 꽃이 시들면 마음 아파 울던 아이도 있었다. 그저 웃고 넘기기엔 너무 섬세하고 동심이 묻어나는 따뜻한 이야기다.

어느 아버님은 몸이 편찮으셔서 며칠 병원에 계시느라 꽃에 물을 못 주었는데 퇴원하고 와보니 이웃 분식집 어머님이 계속 물을 주시고 계셨다.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물을 주셨는지 여쭤보니, 정원 만들 때 돕던 일손이 당신 가게에 와서 분식을 드셨다고 하시며 아버님이 안 나오셔서 걱정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 감동이 되었다.

풍성한 가을을 지나며 우리 동네는 그렇게 정원과 어우러진 행복이 묻어나는 추억거리를 간직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꽃이 진 자리에, 안산시의 도움을 받아 수천 송이의 꽃을 새롭게 심었다. 지난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만든 정원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기에 주민들은 또 꽃을 가꾸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한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온 마을이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꽃을 가꾸는 일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동네가 정성을 다해 보자는 캠페인을 다시 시작했는데 아침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병뚜껑에 여러 개 구멍을 낸 패트병을 준비하여 직접 물을 주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놀이처럼 느껴졌는지 물장난도 하며 즐거워했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부모님들도 이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준비하는데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살가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참여해 주시는 고마운 주민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감사하다. 또한, 한두 번 하는 단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꽃이 질 때까지 이어나갈 계획이다. 필자도 빠지지 않고 참여 중인데 반가워 해 주는 초, 중학교 친구들을 보며 즐거운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일동에는 아파트가 한 채도 없다. 1980년대 '반월신공업도시'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계획적 공업도시인 안산을 만들면서 이곳에는 아파트를 짓지 않기로 정했다. 주택들이 밀집되다 보니 자연스레 골목이 많다.

골목이 많다는 것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이야기들도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북경에 가면 자전거로 골목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느리게 관광하는 ‘후통(胡同)’이라는 상품이 있다. 역사를 거슬러 수백 년 전 고택들과 그 속에 생활하는 현대 중국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느리지만 소소한 감성이 생기는 이 뒷골목을 보기 위하여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다.

일동의 골목 정원은 점점 변해가는 골목에 정원을 조성해서 오가는 길에 꽃을 보는 즐거움을 주고자 시작했다. 골목에 플랜트 박스를 설치하거나 기존의 화단, 화분에 꽃을 제공하고 잘 가꾸시도록 지난해 한여름에 집집마다 방문해서 홍보하고 권유하는 과정을 거쳐 수십 가정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지금도 골목을 다니다 보면 ‘정감톡톡(일동의 로고)’이 새겨진 골목길 정원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원들은 수고한 주민들을 응원하는 듯 동네방네 활짝 피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