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생각하기>
오락실에서 파전집에서
<세상 생각하기>
오락실에서 파전집에서
  • 안산뉴스
  • 승인 2019.07.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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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희 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반항아 친구 이야기 계속 이어간다. 친구와 나는 잡담하는 모임이라는 가벼운 모임에 들어가서 허리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 일은 둘을 급격히 친하게 만들었고 남은 장벽을 없앴다. 그곳은 공부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 부당함에는 좌시하지 않되 노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 술은 즐기되 안주발은 세지 않는 사람 등으로 요약되는 기정복합(奇正複合)적 모토를 옵션으로 내걸었는데 별 어렵지 않겠다며 맑은 표정으로 들어가 많은 친구와 선후배를 사귀었다. 견해가 전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양보와 절제가 어떤 것인지 알았는데 커뮤니티에서 갖춰야 할 태도나 소양까지 체득한 것은 망외의 소득이었다.

교정 안팎은 온통 자유와 진리의 마당이었다. 빈 강의실을 찾아 하늘과 땅속을 난무하는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고 러시아 장편을 읽으면서는 영혼을 맑게 씻었다. 이어령의 명작 흙속에 저바람속에를 다시 일독하고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았으며 신문 사회면을 가운데 놓고 바깥세상을 토론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감수성이 깊어지면 불경과 성서까지 애써 이해하며 신비주의에 젖기도 했다. 기억 희미하지만 모파상의 마틸드를 만난 것도 김유정의 봄봄에서 고집쟁이 장인을 또 뵌 것도 리영희의 역작들을 읽은 것도 그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수업을 땡땡이 치고 전자오락실에 가서 적잖은 시간을 쏟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당시의 전자오락은 바다 건너 저들 서구 선진이 전파한 ‘산업’이었지만 아직 지구촌 변방에 머물러 있던 대한민국에게는 낯선 ‘서양 문명’이었다. 그러나 이때 수입된 문명은 이른바 80년대 판 ‘EDPS’로 대변되는 전자·정보·통신 산업의 맹아 형태로서 이후 한반도에 불어 닥칠 거대한 IT산업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과연 전자오락이라는 이 낯선 게임은 피해갈 수 없는 유혹이었고 배설의 즐거움처럼 폐쇄된 공간 속에서 만끽하는 욕구 충족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게임은 갤러그나 벽돌 부수기였는데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가면서 벽돌을 부수는 초기 소프트웨어는 비록 항문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환호 그 자체였다.

이것은 파괴해서 쌓여가는 점수를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만족을 이어가는데 이때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크게 할수록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파괴하면서 얻어지는 즐거움, 끝없는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종당에 가서 인간은 전자오락을 닮은 ‘진짜 전쟁’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재앙 같은 전쟁, 있어서는 아니 될 전쟁, 그런 전쟁 발발의 심사는 진정 욕심이자 야욕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아직 내 식견 밖에 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나약한 한 인간이 새로운 것을 개발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개발된 무기로 상대방을 부수고, 부서지면 다시 건설하고 건설이 완료되면 타인에 의해서 다시 무너짐을 당하는 작업이 끝없이 반복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 6천년은 시지프스의 작업처럼 올라감과 미끌어짐, 세움과 허물어짐이 반복되는 과정인지 모르겠다.

이렇듯 친구와 나는 도서관과 오락실을 오가며 독서를 하고 서양사람이 만든 문명인 전자오락기에다 한국 사람이 만든 50원 짜리 동전을 넣고 ‘만들고 부수는 역사’를 마구 경험하면서 우정을 쌓아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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