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훈의 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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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뉴스
  • 승인 2018.10.3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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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춘 안산귀한동포연합회장

“섬기는 모습 인정받아 행복하다”

 

지난 일요일 저녁 6시쯤. 안산시 원곡동 원곡파출소 옆 농협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3층 상가건물에 불빛이 환하다. 1층 여행사를 찾은 사람들 입에서 중국말이 오간다.

여행사 업무를 보러 온 한족출신의 중국 사람들이다. 약속장소인 2층 커피숍으로 올라가니 세 테이블에 손님이 있고,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중국동포들의 말투다.

3층은 안산귀한동포연합회 예술단원들의 연습장이자 회의실이다. 3층 건물 전체가 중국동포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해피 카페’라는 이름으로 지난 4월 개소한 이 커피숍은 안산귀한동포연합회가 스스로 운영한다. 귀한동포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보니 일반 커피숍 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고 수익금 일부는 동포들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다.

전화를 하니 3층에서 회의를 마친 방일춘 안산귀한동포연합회 회장이 커피숍으로 내려왔다. 3개월 전에 만났을 때 보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란 모습이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저 이제 환자 같지 않죠?” 라며 기분 좋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온다. 방일춘 회장은 2017년 9월에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로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현재는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3개월 전 기자와 만났을 때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빠진 머리카락 때문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직 많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빠진 머리는 거의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얼굴빛도 건강을 회복한 느낌이다.

방일춘 회장은 23년 전인 지난 95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어린 딸을 심양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한국에 건너와 대구에서 힘든 식당일을 하며 고생을 했다. 서툴렀던 한국말을 그때 배웠다. 그러다 심양에 살던 친정 오빠가 안산으로 왔다. “오빠가 안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죠. 중국사람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며 우리 남매도 안산에서 모여 살자고 했죠.”

오빠의 말을 받아들여 대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안산과 인연을 맺은 방일춘 회장. 안산에 왔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던 시절이라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중국으로 돌아가 3년 정도 지내다 다시 안산으로 와 골목에 있던 식료품 가게를 인수했다. 중국 보따리상들로부터 야채와 간식 재료를 받아 중국에서 온 근로자들에게 파는 일이었다. 그사이에 중국에 남아있던 친정어머니와 여동생도 안산으로 건너왔다. 현재 여동생은 원곡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화장품 전문 기업 (주)에이앤 일을 겸하고 있다.

어린 딸을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식료품 가게의 벌이는 노력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먹고사는 정도에 그쳤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2년간 운영하던 식료품 가게를 접고 2005년에 (주)신다국제여행사를 차렸다. 중국동포와 중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안산 최초의 여행사였다. 중국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을 한국에 들어오게 하려면 비자 발급이나 초청장 등 영사관과 출입국 업무가 필요한데 한국말이 서툴고 생계에 바쁜 사람들이 서울까지 오가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방일춘 회장이 여행업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고객들의 출입국 업무를 대행하다 보니 정작 여행업무는 뒷전이고 한국생활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일이 주가 됐다. 원곡동에 살고 있는 중국동포들의 멘토가 된 것이다. “중국에서 일하러 오신 분들이 먼 이국에서 얼마나 힘들겠어요? 진실하게 상담을 해줬죠. 그게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여행사는 지금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딸이 엄마 대신 운영하고 있다. 한 가지 일에 성이 차지 않는 엄마를 닮은 것일까? 여행사를 운영하는 딸은 곧 오픈할 예정인 쇼핑몰 준비에 바쁘다.

여행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방일춘 회장은 글로벌 해피 카페인 2층에 중국요리 전문점 ‘방향원’을 냈다. ‘방향원’은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간이어서 환갑, 진갑, 돌, 생일잔치 등 각종 행사를 치를 수 있고, 고품격 중국 정통 요리로 내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원곡동의 명소가 됐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중국요리전문점 문을 닫았다. 지금은 귀한동포연합회가 운영하는 ‘글로벌 해피 카페’가 그곳을 대신하고 있다.

여행사와 중국요리 전문점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중국에서 온 분들이 한국생활에 적응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듣고 보며 알게 됐다. 방일춘 회장이 개인의 삶에서 공동체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게 된 일이 원곡동 주민자치위원이다. 올해로써 4년째다. “지금보다도 중국 동포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심했죠. 중국에서 일하러 오신 분들이 한국에서 잘 적응하려면 누군가는 한국사회에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먼저 원곡동에서부터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주민자치위원이 됐습니다.”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 보니 또 다른 눈을 뜨게 됐다. 한국사회의 왜곡된 시각을 극복하려면 귀한동포 스스로가 달라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암투병을 하면서 생업을 쉬고 있을 때 같은 귀한동포이신 한아름 경로당 김종수 회장님과 귀향민 경로당 손전식 회장님, 상록구에 있는 희망찬 경로당 박병도 회장님이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연합회를 만들어 귀한동포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자고...”

뜻이 통하니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17년 12월 31일 설립대회를 가진 안산귀한동포연합회. 회장과 수석부회장 등 임원들의 자발적인 찬조금으로 초기 활동자금이 만들어졌고 현재 귀화한 중국동포 5백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연합회는 귀한동포 자녀들의 한국정착 지원을 위한 장학금 지원과 어르신 생활 지원 등 동포들의 어려운 삶을 지원하고 원곡동 다문화 거리에서 방범치안 예방활동과 문화공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 귀한동포들이 한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우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방일춘 회장의 리더십은 공을 나누는 넉넉한 마음과 겸손에서 나온다. 이번 기사를 위한 만남에서만 세분의 어르신(김종수, 손전식, 박병도 경로당 회장)과 수석부회장 등 4명의 부회장 등 임원들에 대한 응원과 노력을 각별하게 자랑한다. “어르신들의 응원과 임원들의 힘으로 조금씩 발전되어 가고 있다”는 말을 5차례나 강조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공을 나누고 싶어한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느냐란 물음에 “노력한 만큼 댓가가 주어지는 나라에서 내 사업을 할 수 있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노력이 인정을 받으니 지역사회를 섬기려고 더 노력하게 된다”는 방일춘 회장은 한국에서 고생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귀한동포들의 노후대책으로 동포양로원을 건립해 사랑과 배움, 나눔을 함께 즐기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세계 각국 사람들이 상생 발전하는 원곡동을 꿈꾼다. “원곡동은 100개국 이상의 사람들이 공존해 살아가는 다문화특구입니다. 이분들을 이방인으로 보지 마시고 그분들의 자원을 활용해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바람을 내비친다.

안산시 원곡동에서 한국인과 다문화인들의 상호공존을 넘은 상생발전의 길을 걷고 있는 방일춘 회장의 리더십에 다문화도시 안산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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