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11)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11)
  • 안산뉴스
  • 승인 2019.07.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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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소나무가 말라죽은 고송정(枯松亭)

고송정은 오정각이 있는 금녕 김씨 집성촌인 화정동의 너빌 마을에 있다(단원구 화정동 산 58번지). 대중교통은 6-1번 시내버스가 유일하다. 마을회관으로 가는 갈래길에서 오른쪽의 골짜기 시멘트 포장이 된 소로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골짜기 끝에 고송정이 있다.

간혹 승용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도로 중간에 철문이 있고 문이 잠겨있는 경우가 있어 차를 돌리기 힘들므로 아예 마을회관에 차를 주차해 놓고 도보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했다가 참화를 당한 김문기(金文起)의 손(孫)인 김충주(金忠柱)가 살던 집이 있던 자리다. 김충주는 역적의 자손이라 하여 종이 되어 상주(尙州)로 끌려가다가 탈출하여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름을 ‘철주(哲柱)’라 고치고 안산 마하산(麻霞山) 기슭의 화정동 너빌마을에 정착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숨어 살면서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 파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스스로 호를 ‘숯 굽는 노인’이란 뜻으로 ‘탄옹(炭翁)’이라 칭하고,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베옷에 평립(平笠)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단종에 대한 마음이 변할 것이 염려될 때마다 망월암(望越巖)에 올라 단종의 묘소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명에 숨진 것을 애통하게 슬퍼하여 흘린 눈물에 망월암 아래에 있던 소나무가 말라죽었다고 한다.

고송정은 1827년(순조 27) 그의 9세손인 진사(進士) 김처일(金處一)이 김충주가 살던 집 자리에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정자 왼편에 ‘탄옹고지(炭翁古址)’라는 글을 새긴 바위가 있고, 주변에 그 당시 심었다는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있다.

고송정 왼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김충주가 단종을 그리며 울던 ‘망월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고송정 정자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서 정자의 분위기를 한층 일신시켜 주고 있다.

원래의 건물은 없어지고, 1936년에 후손들에 의해 다시 그 자리에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사방이 개방된 정자가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1992년에 전면 보수한 것이다.

김충주에게는 1870년(고종 7)에 효자정문이 내려졌다. 1988년 3월 22일 고송정지(枯松亭址)라는 명칭으로 경기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9)

-daum cafe 안산의 역사와 문화유산(http://cafe.daum.net/ansan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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