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져 열리는 직조의 기술
깨어져 열리는 직조의 기술
  • 안산뉴스
  • 승인 2018.10.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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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파커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생각납니다. “나는 갈등이 없는 공공 영역을 상상하지도 염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 없는 삶을 염원하는 것과 비슷한 환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동안 들어온 말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였습니다. 나이에 따라 그것은 다양한 변주를 하며 따라다녔습니다. 유치원 교실, 혹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친구와 싸우면 선생님에게 혼이 났고, 중고등학생 때도 갈등 없이 지내는 것이 당연하게 요구됐습니다.

직장에서도 갈등은 용인되지 않았습니다. 이견을 내는 것은 조직을 균열하는 것으로 우리의 갈등은 흑과 백으로 이분화되어 서로를 비난하는 행위로만 인식되었고, 화해를 통해 종식되어야 하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싸움은 과정이 아니라 귀착지로 인식됐습니다. 싸움을 하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 그래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것, 모 아니면 도, 고로 이혼. 십년 넘는 결혼생활동안 싸울 때마다 이혼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 왔으니 ‘갈등은 전혀 문제가 아니야. 갈등하지 않는 삶이 오히려 죽은 시체 같은 삶이지’라는 작가의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삶은 늘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동생과 싸우면 안된다고 말하던 부모도 서로 싸웠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말하던 선생도 동료 혹은 사회와 싸웠고, 사회부적응자라는 인식표가 따라다닐지언정 직장에서 동료와의 갈등은 제게도 동료들에게도 멈출 수 없는 일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갈등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달고 살았던 저와 남편은 이제 갈등과 사랑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압니다.

파커파머는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남아 번영하고자 한다면 민주주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분리와 모순을 너그럽게 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견과 갈등의 긴장을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는 정치구조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그에게 갈등은 부서져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려야 하는 과정으로 인식됩니다. 당신과 나의 갈등이 서로를 배척하고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당신과 내가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여정. 그것이 나는 옳다는 확신으로 무장했던 완고한 ‘나’가 갈등을 통해 부서져 열리는 것, 양자택일이 아닌 양립의 해법을 찾아가는 ‘직조의 기술’일 겁니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오늘 학생들의 대화 주제였습니다. 언론을 통해 일반화한 목소리가 아니라 예비교사의 입장에서 다른 시각을 펼칠 가능성은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단호히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갈등이나 문제 상황을 사후 처벌적 관점에서 해결하기보다 예방적 관점에서 고민하는 것이 교사에게는 필요하지 않겠냐는 첨언을 학생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양극화된 사립유치원 비리에 대한 문제들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제주도 난민들은 여전히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불순물로 취급받습니다. 나와 의견이나 입장이 다른 당신은 무참한 언어로 지금도 난자당하는 중입니다. 나와 적만 존재하는 상황, 갈등을 바라보는 이분화된 시선은 유아기와 아동기를 거쳐, 청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며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관계에서도 고착되어 갑니다.

갈등을 선과 악의 관계로 바라보고 모 아니면 도로 인식하는 순간, 갈등에 영향을 미친 구조, 그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의 영향은 모두 은폐됩니다. 악이라 선언된 희생양을 단죄하는 것은 갈등의 긴장을 창조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표면적으로만 종식시키는 방법입니다. 갈등이 없는 조직, 갈등이 일방적 희생양만을 만들어 내는 구조는 갈등에 영향을 미친 무언가들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로 만들어 버립니다. 서로가 깨어져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될 수 있는 세련된 갈등의 지속. 지금껏 손가락 끝으로 한 방향만을 지목한 나와 당신, 우리, 그리고 언론이 그 방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안산뉴스 역시 다양한 갈등이 들끓는, 공론의 장이 되길 깨어져 열리는 직조의 기술이 구현되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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