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앞 자판기
식물원 앞 자판기
  • 안산뉴스
  • 승인 2019.07.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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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안산시 상록구 이동 615번지에 고립된 섬처럼 성호기념관과 안산식물원이 있다. 이동 주민들이 오려면 한참을 걷거나 차량을 이용해야 하고 일동에서는 몇 걸음만 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이유야 어찌 됐든 따져보면 일동의 공간은 아니라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마을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두 공간이 주민과 함께 하는 사업도 없고 존재감도 없다는 것이다. 주민 대부분은 식물원에 어떤 식물이 자라는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알지 못한다.

성호기념관도 그렇다. 매년 5월이면 성대하게 축제를 하는데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유도 안 되면서 소음과 교통통제를 감수해야 한다. 주민 중에는 여주이씨 제사 행사 같다는 이야기도 하고 마을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라 사찰 같다는 일갈도 한다. 주민들이 그곳에 가려면 입장료도 내야 한다. 필자는 지난해 성호기념관 관계자의 제안으로 매주 토요일에 어린이 동요교실을 진행했다. 예산이 없다 하여 사비를 털어 피아노도 구매했다. 아이들과 부모님,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장애우 초록반디의 집 친구들까지 20명이 넘게 모여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제안을 했던 담당자가 떠나고 어느 날, 새로운 담당자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공간 사용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고 화가 많이 났다. 언제는 성호기념관에 활기를 불어넣어 달라고 부탁하고 이제는 법적 근거 운운하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간이 없어서 그곳에 간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간 것인데 불쾌했고 바로 장소를 옮겼다.

안타까운 것은 그 후 초록반디의 집 친구들이 올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거리도 멀어지고 계단이 생기니 원장님께서 여간해서는 그 수고로움을 감당하기 버거웠을 것이다. 한 번도 안 빠지고 밝은 미소를 선사해 준 정현이, 한별이 그리고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루 표현하길 없다. 씁쓸하지만 이제 성호기념관에 관심이 없어졌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필자뿐 아니라 다수주민들 생각도 비슷하다.

기념관 옆 식물원에 얼마 전 음료수 자판기가 생겼다. 안산시청 공원과에서 설치했다고 하는데, 절차상 문제가 있어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다. 먼저, 주민들에게 의견을 묻는 절차가 없었고 바로 앞에 있는 상가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두 공무원의 의견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자판기와 길 건너 슈퍼마켓의 거리는 50미터 남짓. 지난해 CCTV를 설치한 뒤로 급락한 가게 매출 데이터가 나왔고 상점 2개 중 하나는 매물로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슈퍼 사장님은 홀로 반대 운동에 나섰고 안산시에 설치 과정과 관리업체 등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보통 보름이 걸리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다 보면 몇 달이 지날 정도로 지루한 과정이었다. 한 달에 1백만 원도 못 버는 상점이 수두룩하고 특별히 나을 것 없는 슈퍼마켓.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시간 쪼개 자료 모으고, 민원 넣고, 정보공개 청구하고...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삶이 너무 고단하지 않은가!

생각다 못해 슈퍼 사장과 일동 체육회장 그리고 필자는 안산시장께 면담 신청을 했으나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대신 정무특보, 공원과장. 공원팀장, 주무관을 만나 절실한 사정을 말씀드리고 철거를 요청했다. 이야기 과정에 의견이 대립하여 큰소리도 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신 분도 있었다. 일동 상점을 살려 보겠다고 안산시는 상인대학을 열어주고 컨설팅도 해주는데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조그만 틈으로 댐이 무너진다는 것처럼 일동 상점가 분들의 처지는 절망적이다. 상인들의 눈물 값으로 자판기를 설치해서 누가 얼마만큼의 이익을 가져갈지는 모르나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란 걸 알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상생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현명한 처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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