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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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뉴스
  • 승인 2019.08.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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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사업을 진행하든, 소소하게 모이는 자리든 예산이 필요하다. 때로는 식사, 간식이나 차를 마셔야 할 상황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공동체 활동을 하라고 정한 공모사업 예산으로 식음(食飮)비를 책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개인 돈을 쓰라는 것이다. 마을 활동을 하면서 변변한 대우는 고사하고 생계유지도 어려워 떠나는 현실에,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탁상에서 정하지 않았나 싶어 안타깝다.

얼마 전, 수원시 권선구 12개 전동 마을활동가 워크숍에 초대받아 다녀왔는데 젊은 엄마의 사연을 들으며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4년 전 ‘공동육아’로 엄마 아빠들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고 다문화 가정을 포함해서 현재 60여 명이 모이는데 대표를 맡으면서 어려움이 시작됐다고 한다. 첫 번째는 단체 활성화를 책임 맡은 위치라 가정 일에 소홀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매달 수십만 원의 사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던 남편의 불만이 시작됐고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웃으면 말씀하시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마을활동가가 처한 어려운 현실이지만 진정한 자치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대비되는 이야기도 있다. 수년 전부터 주민자치를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려는 단체와 그 단체를 활용해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자치가 이슈화되고 전국이 자치로 뜨겁지만 정작 주민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정말 심각한 문제다. 작년 이맘때 뜬금없이 책 10권이 배달됐다. 읽어보니 우리 마을 특집으로 필자의 인터뷰를 포함한 동네 이야기가 10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었다.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만난 적도 없으므로 처음엔 신기했고 황당했으며 동의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 것에 대해 화도 났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나 싶어 강하게 문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전국적인 월간지에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한 이가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을 일에 너무 바쁜 시간을 보낼 때라 내일 내일 하고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다시 생각났는데 이유는, 잡지를 발행한 단체가 요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자치는 누가 하는 것인가! 앞서 말한 젊은 엄마 같은 치열한 현장 경험치가 하나도 없는데 대표회장을 비롯한 상당수의 간부가 있고 한술 더 떠 주민자치를 가르치겠다고 강사를 양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로 바라보는 단체.

필자 생각에 주민자치를 이야기하려거든 주민들과 부대끼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존의 제도에 무조건 반대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정의인 것처럼 해서 존재감이나 위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치는 이론이 아니다. 자치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이론을 들이대는 단체들의 설 자리가 생겨서는 희망이 없다.

일동에는 특별한 마을 기금이 있다. 전국적으로 주민자치회로 전환이 속속 진행되는 와중에도 안산 25개 동은 조례가 없어 주민자치위원회로 남아 있는데 행정보조와 센터 프로그램 관리 정도의 역할이 전부라 수익 사업도 할 수 없고 법인도 만들 수 없다. 조례에 규정한 대로 제약이 많다.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한데 방법을 찾다가, 기금을 조성하여 공동모금회의 지정 기부를 받는 것에 눈을 돌렸다. 해마다 합창단 공연을 꽃다발 없는 음악회로 진행하고 모금을 하여 마을 기금으로 적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자돈으로 지난 겨울, 주민과 학생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사랑이 필요한 가정 방문 산타 학교’를 지원했고 마을 모니터링과 순찰을 돕는 우리 동네 반딧불 모임도 지원했다. 가을에 감을 딸 때 까치의 겨울을 염려하여 까치밥으로 몇 덩이 남겨두는 것과 같은 의미다. 결과는 놀라웠고 주민들과 학생들이 힘을 모아 온 동네가 들썩일 만큼 행복한 축제를 만들어냈다. 예산이 없어도 공동체의 성과를 활용하여 십시일반 만들어내는 주민들의 능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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