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방되었는가?
우리는 해방되었는가?
  • 안산뉴스
  • 승인 2019.08.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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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진 안산새사회연대일:다 교육팀장

얼마 전 제주로 4.3 기행을 다녀왔다.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4.3평화기념관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아래의 문구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지주와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이 다섯 가지 원칙은 해방된 조선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이 발표한 ‘건국5칙’이다. 72년 전에 쓰여진 것인데 지금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공감되는 목표들이다. 해방 조선의 민중들은 좋은 세상을 꿈꾸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일제의 압제가 끝나고 이제 해방을 맞았으니 좋은 시절이 펼쳐질 일만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로부터 72년이 흘렀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일본 정부는 아직도 자기의 죄를 사죄하지 않고 있다. 일본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안의 친일파조차 청산되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굴욕외교를 요구하는 친일 정치인들이 정치권에 가득하다. 일제와 친일파 재산도 제대로 환수되지 않았다. 2019년의 서울 한복판에 '조선총독부' 소유로 된 건축물대장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 뉴스를 타기도 했다. 친일파 재산 환수를 위한 기관인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있던 때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해산시켜 현재는 그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부처조차 없다.

일본과 친일파가 다가 아니다. 미국은 한국 정치에 사사건건 개입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우리 정부가 결정했을 때, 미국은 우리 정부의 결정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심지어 “한일 양국이 관계를 옳게 되돌리기를 바란다”며 한국정부의 주권을 침해하는 발언까지 했다. 이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한국이랑 일본 사이의 일인데 왜 미국이 뭐라고 해?” 그러게나 말이다.

‘해방’이 된 지 74년째인데 식민지 시절 우리를 억압하던 외세와 지배세력은 여전히 우리를 휘두른다. 우리는 ‘해방’ 이후로도 해방되지 못했다.

우리는 왜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나? 4.3 사건을 통해 해방 직후 우리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해방되지 못하고 70여년을 살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았다.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바로, 나라가 절반으로 나뉘어진 채 반쪽의 정부를 세운 것이다. 이로 인해 좌익과 우익이 함께 공존하는 나라의 수립은 물거품이 되었고, 공동체는 돌이킬 수 없게 분열된다. 한 나라에 두 정부가 들어서고, 전쟁이 일어나고, 같은 민족이 서로 적대하고 혐오하는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 비극을 우리는 원한 적이 없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남한에 단독정부가 들어선 것은 순전히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었다.

해방된 제주의 민중들도 한반도의 분단을 원하지 않았다. 제주 사람들은 통일정부 수립을 외치며 집회를 열었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5.10 총선거를 거부했다. 건국5칙을 세우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던 제주 사람들을, 미군정은 서북청년단과 친일경찰을 동원해 고문하고 죽였다. 민중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자 끝내는 군대를 동원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4.3사건이라 부르는 민중 항쟁과 학살의 역사다.

이렇게 외세에 의해 주어진 분단질서가 70년이 넘게 유지되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는 차로 외국에 가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 섬나라 주민이 되어버렸고, 유럽 어느 나라에나 있는 사회주의 정당을 갖지 못하게 됐다. 사상의 자유는 제한되고 정치적 상상력도 극히 빈곤해졌다. 막대한 군사비와 징병제 군복무로 공동체의 자원과 역량이 어마어마하게 낭비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 간의 적대감과 긴장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힘을 유지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은 그 자체로 식민지배의 산물이며, 기득권을 가진 친일·친미세력이 온 힘을 다해 유지시키고 있는 지배질서이다. 민중이 분열되어 있고 서로 적대감과 긴장 속에 있을 때 그들은 힘을 갖는다. 독재정권이 항상 강력한 반공정책을 폈던 이유다.

다시 건국5칙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해방되었으나 72년 전 건국5칙이 꿈꾸었던 좋은 세상은 아직 멀다. 우리가 좋은 세상을 바란다면 이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가야 한다. 우리 공동체의 가능성을 옥죄는 분단 상황에서 벗어나 남북이 힘을 합쳐 함께 살아야 하고, 그 힘으로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친일·친미세력의 설 자리를 없애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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