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서투른 농사꾼
수필 - 서투른 농사꾼
  • 안산뉴스
  • 승인 2019.08.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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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옥 수필가/한반도문인협회 회원

곧 며칠 후면 우리 부부는 안산대부도 주민이 된다. 그림 같은 아담한 집에서 전원생활을 할 예정이다. 쓰고 싶은 글도 쓰고 반려견과 산책도 즐기며 부부는 행복한 노후를 꿈꾸고 있다. 텃밭도 가꾸면서 소박한 하루하루를 말이다.

부부는 올봄부터 주말마다 자가용으로 40여분 씩 달려가 땡볕에 농사일을 하고 있다. 일주일 만에 찾아가는 텃밭은 무성한 잡초만 우리를 반긴다. 뽑고 또 뽑아도 수북하게 자라있다. 풀 약을 하지 않으려고 버텨왔으나 결국은 잡초에게 지고 말았다. 끈질긴 잡초는 풀 약을 해도 죽지 않는다. 그러나 이사 가면 풀과의 전쟁은 없을 것이다. 조석으로 틈틈이 제거하게 될 테니. 일도 아니라고 본다.

서투른 농사꾼은 욕심도 많다. 꽈리고추, 청양고추, 일반고추, 가지, 오이, 상추 등 갖은 야채들을 정성스레 키웠다. 수확의 기쁨도 맛보았다. 매일 똑 같은 반찬이 식탁에 올라온다. 그러나 새로운 음식처럼 부부는 맛있게도 먹는다. 게다가 이웃과도 나눠먹고 있다. “밭에서 바로 수확해 싱싱하고 더 맛있어요”라며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농사를 짓다보면 농작물하고 한마음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극심한 가뭄에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보면서 내 마음도 타들어갔다. 또 폭우와 태풍으로 인해 쓰러지는 농작물을 일으켜주며 같이 아파했다. 농사는 대 농작이나 소 농작이나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마찬가지다.

농작물 중에 고추는 일손이 많이 간다. 서투른 농사꾼은 아무생각 없이 고추를 200포기나 심었다. 심고 나니 아차 싶었다. 건조기도 없이 이 많은 고추를 어찌 말린단 말인가. 어느 날 태풍으로 큰비가 내려 고추밭을 찾았다. 고추밭은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서 아마추어 솜씨가 나왔다. 주렁주렁 열린 실한 고추가 비바람에 중심을 못 잡고 쓰러졌다. 원인은 고춧대를 잘 받혀 주지 못해서이다. 손볼 상황이 아니어서 간신히 바람만 통하도록 응급조치만 했다.

햇볕이 강열하게 내리쬐는 8월은 빨갛게 무르익은 고추를 수확할 시기다. 늦장마는 고추 말리는데 방해가 되었다. 건조기가 없어 서투른 농사꾼에게는 무엇보다도 고추말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고추는 하루 이틀에 말라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남편은 밭 한쪽 귀퉁이에 직사각형으로 각목을 세우고 비닐을 덮어 비가 새지만 않게 허술한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첫 고추를 따서 잘 널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가서 하우스를 살펴보니 빨간 고추가 일부는 까만 고추로 변해 있었으며 또 일부는 하얀 고추로 변해 있었다.

강열한 태양은 흑백고추로 만들어 놓는 요술쟁이였다. 멀쩡하게 마른 고추는 별로 없고 희나리 고추가 많이 나왔다. 빛깔 좋고 탐스런 고추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보니 속이 상했다. 하는 수 없이 다 완성 되어 가는 새집 테라스에 사람보다 고추가 먼저 입주했다.

옛 어르신들은 음력 유월을 미끈유월이라고 했다. 농사일이 바빠 미끄러지게 빨리 지나간다는 뜻이다. 이렇듯 가을만 수확 철이 아니라 유월이 바로 상반기 수확 철이다. 상반기 수확농작물은 감자, 양파, 그리고 마늘 등 주로 뿌리채소들이고 가을의 수확은 오곡백과 줄기 열매들이다.

뿌리채소들은 가뭄을 좋아하는지 유난히도 가물었던 올해는 풍작이다. 양파 값이 대폭락했다. 오죽하면 갈아엎기까지 했겠는가. 그렇다. 마늘과 감자도 예년보다 싸다. 노심초사하며 애써 수확한 농산물이 농민들에게는 기쁨은커녕 애물단지로 변해버렸다.

얼마 전 친정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막내고모 감자와 양파를 수확했는데 좀 팔아줘 봐요, 시골에서는 도매상인들이 사가야 하는데 터무니없이 가격이 싸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요.” 그렇다. 싸던 비싸던 사가면 다행인데 안 사가니 처치곤란이었다. 이처럼 수확량이 많을 때는 소비를 많이 해 주는 게 농부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서투른 농사꾼은 이번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무엇이든 실생활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 일에 따른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굽은 허리 펼 사이 없이 온갖 정성 다 들여 지은 우리의 농산물, 먹을 때마다 고마움과 소중함으로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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