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타우르스의 뒷모습
미노타우르스의 뒷모습
  • 안산뉴스
  • 승인 2019.09.0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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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미노타우르스는 황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로서 크레테의 왕 미노스에 의해 미궁에 갇혀 있다가 나중에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존재이다. 조지 프레드릭 왓츠는 1885년에 ‘미노타우르스’라는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 미노타우르스는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으며 독자는 오직 그의 뒷모습과 그의 옆얼굴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미노타우르스는 울퉁불퉁 솟아오른, 남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하고 여자라면 손끝으로라도 만져보고 싶을 정도의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의 눈에서는 생기를 찾아 볼 수가 없으며 그의 뒷모습엔 쓸쓸함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는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노스는 왕 위에 오르기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포세이돈은 미노스를 위해 황소를 한 마리 보내주는데 미노스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즉시 이 황소를 돌려주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이후 왕위에 오르게 된 미노스는 잘생긴 황소가 탐이 났고 결국 다른 황소를 포세이돈에게 보내게 된다.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복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로 하여금 자신의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포세이돈의 황소와 사랑에 빠진 파시파에는 욕정에 못 이겨 황소와의 육체적 결합을 감행하고는 임신을 하게 된다. 자신의 자식인줄로만 알고 기뻐하던 미노스는 막상 파시파에가 미노타우르스를 출산하고 이어 전후사정을 알게 되자 분노에 차서 미노타우르스를 미궁에 가두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미노타우르스는 태어나면서부터 미궁에 갇혀 세상과는 단절된 채 외로이 홀로 살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미노타우르스는 일반 황소와는 달리 풀을 먹지 않고 사람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미노스는 당시 크레테의 속국이었던 아테네에서 매년 젊은 남녀 각 일곱 명씩을 끌고 와서 미노타우르스의 먹이로 던져주게 된다. 이후 미노타우르스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미로 속에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는 철저히 테세우스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신화의 어느 곳에서도 미노타우르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는 단지 흉측한, 그래서 죽어 마땅한 괴물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사실에 왓츠가 딴지를 걸고 들어온 것이다. 기존까지 신화에 나오는 괴물의 모습은 그들의 흉측한 모습과 흉포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그려져 왔다. 생각하고 고민하며 감정을 느끼는 미노타우르스의 뒷모습을 그림으로써.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의 선택으로 황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히 아버지 미노스의 신과의 약속을 어긴 행위, 그로 인한 신의 복수, 그리고 어머니의 욕정에서 비롯된 출생이었을 뿐이다. 더불어 사람을 먹어야만 하는 그의 식성도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희생자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기 시작했고,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구분되었고, 평시에는 철저히 잊혀진 존재였다. 그리고 단지 태어날 때의 타고난 외모와 식성에 의해 그는 죽여 버려야할 사악한 존재로서 자리매김 되었고 결국 그렇게 죽어간 것이었다.

이렇게 비극의 운명을 지니고 살아가던 미노타우르스가 미궁 너머로 바라보던 그 곳은 어디였을까? 무엇을 보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알았을까? 왜 자신이 거기에 갇혀서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왜 아무도 자기와 이야기를 나누어주지 않는지를, 그리고 왜 자기가 죽어야만 하는지를.

혹시 왓츠는 미노타우르스의 뒷모습을 그리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보게, 보이지 않는가? 미노타우르스의 뒷모습에 비추인 수많은 장애인들의, 비정규직 청년들의, 성소수자들의, 난민들의, 그리고 다문화 노동자들의 외롭고 축 쳐진 어깨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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