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가짜뉴스, 뜨거운 고통
차가운 가짜뉴스, 뜨거운 고통
  • 안산뉴스
  • 승인 2019.09.2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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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가짜뉴스가 21세기 나라 안 밖에서 창궐하고 있습니다. 실은 거시적 영역 뿐 아니라 삶 바로 옆 미시적 영역에서도 온갖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확산되고 재생산됩니다.

가짜뉴스는 근거도 없이 던져보는 악의적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데 개인의 관계에서는 상상과 추측으로 시작되는 소문, 조직과 집단 차원이라면 거짓제보와 허위 민원 등이 그 출발이 됩니다. 소문이 거짓제보와 허위민원으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거짓제보와 허위민원이 담당자에 의해 유출되며 소문으로 확산되기도 합니다.

가짜뉴스가 생성되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세 주체가 필요합니다. 가짜뉴스의 최초 생산자, 생산자의 의도대로 기꺼이 유통 통로가 되어 주는 유포자, 당사자에게 가짜뉴스를 충실히 배달하는 배달자.

가짜뉴스 생산자의 가장 큰 목적은 상대에게 윤리적 데미지를 입혀 본인에게는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주고, 사회적으로는 그에 대한 부정적 평판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이렇게 생성된 가짜뉴스는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결여된 채, 걱정이나 비난의 형태로 유포자를 통해 전달되고 확산됩니다. 걱정은 일견 공감으로 보이는 유포 방식이지만 실상 정의로운 나를 과시하고자 하는 자기애에 기반합니다. 분석이나 근거 없는 비난을 통한 유포는 특정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기에 대한 부풀려진 느낌, 즉 안도감을 갖고자 하는 것이 무의식적 목적으로 작동합니다. 소문은 당사자에게 도달하지 않으면 결국 소멸되지만, 당사자에게 당도하면 새로운 국면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 새로운 국면을 원하는 이들이 소문을 당사자의 눈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언론이라면 재생산되어 뉴스가 될 만한 이슈들을, 개인 혹은 좀 더 큰 조직이나 집단과의 관계라면 전달하는 조직과 집단, 개인의 주장이나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도움이 될 만한 소문을 당사자에게 최종 배달합니다.

가짜뉴스가 이런 매커니즘을 통해 앙상하고 연약한 개인이나 조직, 집단의 욕망과 결핍을 충족시켜 주기만 하면 나름 그 필요가 인정될 수도 있으나, 가짜 뉴스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당사자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데 가짜뉴스의 가장 큰 위험성이 있습니다.

역사학자 유발하라리는 이렇게 형성되는 가짜뉴스 속에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사실, 즉 실재하는 고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짜뉴스에는 모멸과 수치를 온 몸으로 경험해야 할 당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가 느끼게 될 고통은 엄연히 실재하는 고통이라는 사실이 가짜뉴스의 이면에 못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짜뉴스가 특히 한 존재에 대한 배제, 소외, 거절, 거부, 혐오를 전제한다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가짜뉴스 앞에 선 자기 욕망과 분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 ‘합리적 의심’이란 언어로 포장하겠다면 그것은 한 존재 앞에 선 불특정 거대 다수를 위한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 ‘다양성’, ‘합리적 의심’이란 용어는 집단 앞에 선 개인과, 다수 앞에 선 소수를 위한 보완적 언어입니다. 개인과 소수의 언어를 광기에 가까운 집단의 상상과 의심을 변호하는데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가짜 뉴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허구와 실체를 구분하기 위해 훨씬 더 열심히 분투해야만 한다.(중략) 난무하는 허구들 중에서도 가장 큰 허구가 세계의 복잡성을 부인하면서 더없는 순수 대 사탄과 같은 악이라는 절대적인 용어로 생각하는 것이다” 유발하라리는 가짜뉴스가 우리 앞에 당도했을 때 직면해야 할 태도를 타자의 고통과 화자의 깨어있음으로 설명합니다.

소문의 대상자가 되어 분노하다가도 또 따른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가짜뉴스의 이동통로로 기꺼이 역할 하는 일상 앞에서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고통이 내가 느낄 때만 고통이 아니라 타인이 느낄 때도 고통임을 아는 것, 결핍을 메꾸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에 분투할 수 있는 깨어있음만이 가짜뉴스에 휩쓸리지 않는 등대가 된다는 것. 오늘도 우리 앞에 배달 될 가짜뉴스 앞에서 기억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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