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안산시민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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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민 되기
  • 안산뉴스
  • 승인 2019.09.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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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내가 살고 있는 이 고장 안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본다. 전라도 땅에다 태를 묻고 부산과 서울 등지에서 살던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는가. 가끔씩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해본다. 내가 안산에 살게 된 내력은 삼십년 전 이 고장에서 살았던 친척 한 분과의 만남으로부터 얻어진다. 신입사원 시절 서울 자양동에서 살던 80년대 후반 친척 분을 만나기 위해 안산에 자주 들렀고 그럴 때마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서 표지판을 봤으니 최용신과 상록수다.

이 고장에 대일 항쟁기 시절에 사람들을 가난과 문맹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을 하다가 젊은 생을 바친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이 농촌 계몽 운동에 전념할 것을 결심하고 다니고 있던 신학교를 중퇴한 후 이곳 샘골에 내려와 농촌 교육을 펼친 최용신이라는 신여성이다. 이 이야기는 안산에 사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

80년 전 여인과의 인연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대학 졸업 후 푸른 꿈을 안고 사회에 나온 내가 안산으로 들어와야겠다고 한 것은 앞서 이곳에 와서 살던 친척의 권유도 있었지만 이런 신여성의 돋보이는 삶의 흔적에서도 영향을 받았지 않았을까 하는 ‘과도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안산에 들어온 지 서른 해가 넘었다. 상전벽해라고 할까, 예상한대로 안산은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70년대 후반부터 개발도상의 포물선을 그리면서 가파르게 성장하여 지금은 인구 80만에 육박하는 도시로 성장하여 광활해졌다. 메마른 서울 부산보다는 작아서 정들어 살기에 딱 좋고 내가 태어난 신안이나 인근 목포보다는 넓고 편의시설도 많아 불편함이 없다.

정이 들면 고향~. 사람들은 대개 태어난 곳에서 살지만 어떤 이는 낳기만 하고 엉뚱한 곳에서 살아간다. 난 곳에서 절반쯤 살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유랑하듯 사는 사람도 있고 전쟁 피난민처럼 예상하지 못한 타향에다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도 많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 호남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소년기 중반에 그곳을 떠났으니 생의 7할 이상은 외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삶을 보니 사람만큼 적자생존의 동물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생명체도 없는 것 같다. 부산이면 부산, 서울이면 서울, 미국이면 또 미국 어디를 가든지 나름대로 잘 적응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직장이 그렇게 만들고 생업이 그렇게 만들고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이 그렇게 만든다. 합리적인 이기심일진대 인류가 모여 도시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업으로 와서 살다보면 드는 것은 정이다. 그러다가 다른 이유가 생기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정 붙이고 살고 그러면서 잠시 옛정을 못 잊어 할 것이다. 내 경우 소년기 때 부산으로 갔을 적에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밤늦게까지 훌쩍거렸는데 성장하여 그곳을 떠난 후에는 부산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뜨거운 지열로 내 청소년 시절을 키운 부산이라는 거대 도시도 그곳 떠난 지 기십 년이 되는 2019년 작금 동일한 이름으로 낯설다. 흘러간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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