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도 디테일에 달렸다
마을도 디테일에 달렸다
  • 안산뉴스
  • 승인 2019.09.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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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크게 보면 별거 아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없던 문제도 생긴다는 것이다. 근사한 계획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모든 마을 사업을 행정이 주도하고 주민들은 보조 역할을 했다면 최근에는 주민들의 자치 역량이 향상되면서 거버넌스(Governance)의 형태로 협치를 시도하고 있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주민들과 협동하고 합의해서 마을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의미는 좋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디테일에서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해 무늬만 협력을 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도 많다. 이론적으로 의논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면서도, 행정은 주민의 역량을 믿지 못하고 주민은 행정의 권위주의적인 일처리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거기에다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도 존재감을 보여 주면서 주민들을 견제한다.

예를 들어,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매칭사업(경기도와 안산시, 중앙 정부와 안산시 등) 임에도 해당위원회에서 부결하는 촌극을 벌인다든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누더기 조례를 만들어 웃음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주민을 견제하겠다는 것인데 시대에 뒤떨어지고 자신을 뽑아준 주민들을 무시한다는 의심 받을 수도 있다.

이렇듯 서로의 신뢰가 없으면 협치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원래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조그만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주민들끼리 틀을 만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전문적일까 생각하면 솔직히 별로 내세울 것 없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들어가고 품도 보통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전혀 전문적이지 않으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활동이 돋보이는 마을의 공통점은 조그만 것에 충실하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더불어‘ 가더라는 것이다. 모이는 것에 집중하고 조그만 것에도 소통하며 상대를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자치의 성과를 내고 싶은 지자체나 단체에서 이해되지 않는 모습들이 보인다. 주민과 함께 하는 일에는 소홀하면서 명성을 쌓기 위해 서류 꾸미기에 집착하거나 홍보 마을을 만들어 스토리텔링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주민도 없고 자치도 없지만 어처구니없게 전국에서 찾는 벤치마킹의 장소가 되고 성과를 가져가기도 한다. 이제는 인위적이고 전략적으로 가공된 마을을 가려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일동의 디테일은 차이가 있다.

지난해 정원 만들기 사업 후 조성된 마을 곳곳의 정원에 주민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등굣길에 꽃에 물주는 일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데 페트병을 활용해 정원에 물을 주고 가꾸는 과정을 공유하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마을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공동체성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학교 앞에 가면 이중주차 금지 노란풍선 캠페인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단속 권한도, 처벌 권한도 없으나 주민들의 변화를 이끌어 이중주차를 근절하는 성과를 만들어냈고 캠페인 과정에 주민 단체들과 운영위원회, 학부모회, 파출소 등 거의 모든 단체가 관계로 묶이는 성과가 있었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중학교 앞에도 안전한 통학로 길이 만들어졌고 주민 모임들이 역할을 나눠 참여하고 있다.

지역의 상점들은 주말마다 아기자기하고 사연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 마을의 일원임을 보여준다. 미술을 전공한 주민의 재능 나눔과 지역 청소년, 상가들이 한조가 되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작업을 한다.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보는 주민들에게 따뜻한 마을이야기도 들려드린다. 때로는 합창으로, 책을 읽는 모임으로, 마을을 순찰하는 반딧불로 모여 마을을 살핀다. 중요한 것은 모두 자발적으로 모였고 할 일을 스스로 정해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디테일에 충실한 모범적인 모습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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