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과 방연, 그리고 검찰
손빈과 방연, 그리고 검찰
  • 안산뉴스
  • 승인 2019.10.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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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 네트워크 회장

중국의 춘추 전국 시절, 손빈과 방연은 스승 귀곡자 아래에서 같이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둘은 같이 공부하는 동안 각별한 우정을 나누면서 나중에 세상에 나갔을 때 먼저 자리를 잡는 자가 다른 사람을 끌어주기로 굳게 맹세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방연이 먼저 세상에 나와 당시 최강국이던 위나라로 들어가 실력을 발휘하여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방연은 손빈과 함께 나누었던 약속은 잊어버리고 만다.

얼마 후 손빈 역시 방연의 뒤를 이어 위나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방연은 자기보다 실력이 앞섰던 손빈에 의해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결국 방연은 손빈이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을 교묘히 왜곡하여 손빈을 간첩으로 모함한 후 얼굴에 글자를 새기고 손빈의 두 무릎 아래를 잘라버리는 참형을 받게 했다. 그런데 방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손빈을 아예 없애 버릴 흉계를 꾸민다. 하지만 그동안 손빈을 돌보던 시종이 손빈의 인품에 반해 모든 사실을 알려주게 되고 이에 손빈은 제나라로 탈출한다.

세월이 흘러 방연과 손빈은 각기 한 나라의 군대를 이끄는 장수가 되고 마침내 전쟁터에서 맞붙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손빈은 방연의 공격에 대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번번이 도망치기만 한다. 이에 기세가 올라 손빈을 쫓던 방연은 손빈 군대가 머물던 숙영지의 아궁이 숫자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을 보고는 손빈의 군사들이 겁에 질려 탈영을 하고 있다고 짐작한다. 이에 기세가 오른 방연은 손빈을 사로잡을 욕심에 소수의 병사만 이끌고 성급하게 손빈을 추격한다. 하지만 결국 방연은 마릉 골짜기에서 손빈의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사정없이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지난 토요일 100만여 명의 시민이 서초동 검찰청을 둘러싸고 한목소리로 검찰 개혁을 외치는 결기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검찰 자신이었다. 검찰은 일개 장관 한 명의 임명을 두고 지난 두 달 동안 건국 이래 최대의 수사력으로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론과 야당에 피의 사실 흘리기를 통해 의혹 부풀리기와 여론 재판을 유도하면서 일가족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하지만 검찰은 지금껏 제시된 혐의 사실 중 어느 것 하나 범죄를 입증할 결정적 단서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경제 보복과 북미 대화를 비롯한 모든 국가적 이슈를 덮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당사자도 아닌 딸의 봉사 표창장 위조 혐의가, 부인의 사모펀드 개입 혐의가 모든 국가적 아젠다를 덮을 만큼 중대한 일이었냐고. 정말 뭐가 중한 것인가?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이 검찰이 수사권 및 기소 독점주의로 상징되는 그들의 이권과 특권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그리고 자신들을 견제할 공수처 설치를 비롯한 개혁 조치를 도저히 받아들일 마음이 없음을 온 국민에게 알려주었다. 더불어 대통령의 해외 출장 틈을 탄 11시간의 ‘짜장면 압수수색’과, 짜장면이 아닌 한식을 먹었다는 코미디 같은 해명을 통해 자신들이 이 사건의 불편부당한 객관적 존재가 아닌 사건의 일방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음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는 동안 국민들은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서서히 조국 장관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초동에서 국민들이 외친 ‘내가 조국이다’라는 구호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조국 장관의 임명에는 부정적 여론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높은 찬성 여론을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조국 사태’는 이제 ‘검찰 사태’가 되었으며 검찰의 개혁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며, 그동안 자신이 이룩한 성과와 힘에 도취해 상대방을 우습게 여기고 몰아붙이다가 결국 마릉 골짜기의 어둠 속에서 비참히 쓰러져간 방연의 모습이 서초동 검찰청의 모습에 오버랩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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