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반도체와 세월호, 그리고 안산
서울반도체와 세월호, 그리고 안산
  • 안산뉴스
  • 승인 2019.10.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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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원 안산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9월 24일 ‘방사선 피폭사고로 23살 제 아들이 아픕니다. 반도체 사장을 처벌해주십시오.’란 글이 올라왔다.

청원 내용을 요약하면, 올해 7월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이 반도체 외주업체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했다. 최소한의 방사선 안전교육 없이 방사선이 방출되는 기기에서 작업을 하다가, 다량의 방사선에 피폭되었다. 이에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 가족인 아버지가 요구하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2014년 4월 벌어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이 5년이 지나고, 2000일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계속 요구하는 내용과 똑같다.

세월호 참사와 방사선 피폭 사고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먼저 우리 안산과 관련이 깊고, 피해 규모가 크다. 세월호 참사로 수백 명의 단원고 학생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별이 된 친구들의 가족과 친구, 이웃인 수천 명의 안산 시민들은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사선 피폭 사고가 발생한 서울반도체는 이름만 보면 서울에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안산에 위치한 회사다. 서울반도체는 매출액이 수천 억, 직원이 수천 명인 반월·시화공단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이런 큰 회사에서, 그것도 방사선으로 인한 위험성이 큰 회사에서,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고, 방사선 피폭 사고로 수년간 방사선에 노출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정말 큰 충격이다.

피해 가족들과 이를 지켜본 시민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같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꾸준한 외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방사선 피폭 사고로 23살 아들의 손가락이 검게 변하고, 피부가 벗겨지고, 손톱이 빠지는 모습을 본 아버지 이희철 님 역시 ‘방사선(엑스레이) 설비 사용실태를 철저히 조사하여 하루빨리 적지 않은 방사선 피폭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 ‘반복적인 사고에도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서울반도체 대표이사를 엄하게 처벌하고 행정적으로도 제재할 것’,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 땅에서 일하다가 다치고 죽는 아들딸이 없도록 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안산시민들은 ‘4.16 안산시민연대’를 만들어 피해 가족과 연대해 활동하고 있다. 서울반도체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나고,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켜본 시민들은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안산의 중요한 동력인 반월·시화공단에는 4,500여개의 전기전자업종 사업장과 75,000여 노동자들이 땀 흘려 일한다. 지난 4월, 서울반도체에서 일하다 2017년 악성 림프종에 걸려, 힘겨운 투병을 이어가던 이가영 청년 노동자가 26살 채 꽃피지 못한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규모가 큰 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수많은 작은 사업장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심히 우려스럽다.

사람의 건강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리고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기업의 재산과 이윤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 그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안산이 모범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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