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순 노블레스 세탁수선 사장
김준순 노블레스 세탁수선 사장
  • 안산뉴스
  • 승인 2018.11.0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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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휴일이었던 지난 일요일 오후 1시쯤. 롯데마트 안산점 4층에 있는 세탁소를 찾았다. 세탁소 입구에 고객들에 대한 감사 인사 말씀과 함께 80세 이상 노인들의 바지는 무료로 수선을 해드린다는 안내 말씀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절반은 세탁소, 절반은 수선집으로 이등분 되어 있고 가운데 통로가 카운터로 사용되고 기자보다 먼저 온 두 명의 손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을 이으며 수선할 내용을 설명하느라 바쁘다. 롯데마트 4층에 있는 ‘노블레스 세탁수선’ 김준순 사장(69)이 기자가 찾은 오늘의 주인공이다.

이 수선집 사장님은 기자의 어머니께서 소개해 주셨다. 평범한 이웃이지만 자신의 일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실력 있는 이웃을 소개하려고 한다는 말에 어머니께서 추천한 것이다. “롯데마트에 있는 세탁소에 가면 노인들의 옷을 무료로 수선해 준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도 이용해 보셨냐고 여쭈니 “벌써 세 번이나 이용했다” 하신다.

“사장님이 둥글둥글하니 인상이 참 좋다”는 말씀을 더해 주셨다. 노인 고객을 잘 모시는 분, 인상 좋은 분이라는 두 가지 정보 말고는 다른 정보도 없이 ‘노인이면 65세 이상 노인이지 왜 80세 이상 노인일까?’ 궁금증을 안고 찾아갔다.

손님이 가시고 나서 인사를 나누자마자 또 한 손님이 들어온다. 하던 말을 멈추어야 했다. 손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선을 3시까지 해달라는 주문이다. 수선집 사장님께서 살갑게 “바쁜데...알았다”고 대답 하시는 말본새가 단골손님임을 알아차리게 해준다.

단골손님이 가고 나자 또 한 손님이 들어오신다. 이번에는 아이를 안은 동네 분 같다. 주문하는 걸 듣고 나서 말을 살짝 걸어보았다. “단골이신가요?” 갑작스런 질문에 아주머니께서 조금 당황스러운지 간단하게 대답하신다. “네. 단골에요.”, “얼마나 자주 오시길래 단골이라 하세요?”, “쇼핑 올 때마다 들리니 한 달에 네 번은 와요.”, “그렇게나 자주 오세요?!”, “단골이 되신 이유라도 있으세요?” “사장님이 꼼꼼하게 잘하세요.”

시간을 보니 삼십분이 훌쩍 지나갔다. 이렇게 취재하다가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든다. 편안하게 가벼운 질문부터 묻는 방식을 바꿔 꼭 필요한 질문부터 묻기로 했다.

“노인들에게 무료 수선을 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를 물었다. “올해로써 이곳에 개업한 지 12년째가 됩니다. 그러니까 재작년 10주년을 맞아 나도 뭔가 뜻있는 이벤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노인이면 보통 65세 이상을 말하는데 왜 8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저도 내년이면 칠십입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나이 든 분들과 대화도 하고 싶고, 다 무료로 수선해주면 나는 뭐 먹고 살아요? 내 맘이지 호호호” 특별한 대답을 너무 크게 기대했던 탓일까? 다소 싱거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에 또 한 분의 손님이 오셨다가 주문하고 나가신다. 이번에도 단골이시다. “오시는 분들마다 단골이시네요?”, “그게 다 제 기술이 좋아서입니다.”, “손님 단골 만드는 기술요?”, “그것도 기술이지만 수선기술이 워낙 좋다 보니 여기 한번 맡겨 보면 다른데 못가죠”, “자부심이 넘치시는군요?”, “실력이 좋으니 자부심 갖는 건 당연하죠.”

롯데마트에 있는 옷가게가 70여 곳. 그 가게마다 수선 고객이 하루 한 명씩이라면 70명의 손님이, 2명씩이라면 140명의 손님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옷가게 손님들이 오래 기다려주지 않으니 옷가게 사장님들은 수선을 재촉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안 해 본 수선이 없고 빨리 수선을 해줘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고 안 해 본 수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예술인아파트나 선경아파트 등 롯데마트로 옮기기 전에 알게 된 고객들한테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게 마음에 쓰인단다.

김준순 사장님이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 중 또 다른 이유는 수선기술을 가르쳐 어엿하게 먹고 살만한 제자를 셋이나 길렀다는 것. 산본, 안산 두 곳 등 수선집 세 곳의 수선집 사장님 모두 수선을 배워 자식들 대학 공부까지 마쳤단다.

김준순 사장님도 수선으로 대학 교수인 딸을 교육시켰다. 딸 자랑 좀 해보시라는 말에 절레절레 손사래를 치신다. “대학 교수인 것이 뭔 자랑거리냐?” 말은 그리 하지만 ‘나 교수 딸 엄마야’라는 자부심은 숨어 있다.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22살 서울에 올라오기까지 농사일을 했다는 김준순 사장님. 큰 언니를 따라 나사라학원에서 재단 일을 배워 양장점과 남대문에서 30명 가량 직원을 두고 기성복 매장을 운영했다. 남편 일을 따라 안산과 인연을 맺었다는 김준순 사장님은 30여년 수선집을 하면서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안산과 역사를 같이하고 있는 김준순 사장님의 꿈은 무엇일까? “무료로 기술양성을 시켜 그 분들이 먹고 살게 해주고 싶어요.” 자신이 넉넉한 살림이 아니기 때문에 관공서에서 공간을 제공해주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기술 양성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마음속 바람을 내비친다.

관공서에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쉽지 않더라고요.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주지 않고, 한마디로 신경 쓰기 싫다는 거지요. 이야기 좀 된다 싶은 공무원을 만나면 곧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요.” 협회와 힘을 합쳐 해보지 그러시느냐고 물으니 “협회는 이론 위주로 교육을 진행하고, 추구하는 게 다르다 보니 잘 맞지 않는다”며 “돈만 있으면 내 돈으로 공간 마련해 해보겠는데...” 라며 말끝을 흐린다.

30여년 거창하게 산 삶은 아니지만 수선이라는 한길을 걸으며 분야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을 만들어 온 시간, 내게 있는 실력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시간들. 이제는 자신보다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해 살가운 미소와 붙임성 있는 이야기꽃을 베풀며 살아가는 김준순 사장님의 사람의 향기가 담겨있는 세탁소를 나오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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