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전도, 도착, 역전
광장의 전도, 도착, 역전
  • 안산뉴스
  • 승인 2019.10.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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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광화문 광장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봤습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광우병 의혹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한미 FTA를 체결한 정부에 대한 분노로 시작됐습니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이루어진 광화문의 촛불 집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 및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진행됐습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路祭)때도 광화문 광장과 시청 광장은 빼곡한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기사로만, 영화로만 접한 가득 찬 광화문 광장도 기억합니다. 2002년 6월 경기도 양주 지방도로에서 중학생인 효순이와 미선이는 주한 미군의 장갑차량에 깔려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미군 법정은 운전병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고, 그 해 11월 반미시위 성격으로 확산된 촛불집회는 광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1987년 6월은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와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광장을 메웠습니다.

2008년과 2016년, 그 이전의 2002년과 1987년의 광장은 명백한 고통의 대상과 그 고통을 은폐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고통을 유발한 권력이 있었습니다. 광장의 저항은 권력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명확한 실체로 존재하는 고통에 대한 슬픔과 공감, 무엇보다 그 고통을 막지 못한 개별적 절망들이 있었습니다.

광우병 의심에도 불구하고 전면 개방된 쇠고기로 안전을 위협받게 될 우리의 아이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전선에서 희생된 세월호 희생 학생들, 아직 어린 효순이와 미선이의 처참한 죽음, 군부의 폭력적 탄압으로 희생당한 학생들, 바위에서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 뭉뚱그려진 풍경으로서의 사람이 아닌 개별적 존재자로서의 사람, 실존하는 개별적 고통이 촉발한 슬픔, 분노, 무엇보다 깊은 절망이 많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 10월 3일에도 광화문에서는 법무부장관 조국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검찰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담긴 인사였으나, 사모펀드 및 사문서 위조 관련 혐의로 촉발된 도덕성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2019년 10월 3일의 가득찬 광화문 광장은 2008년과 2016년, 2002년과 1987년의 광장과 마찬가지로 구호와 깃발, 분노로 가득 찼으나, 실체하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고통에 대한 공감, 고통에 대한 슬픔, 고통에 대한 절망의 무게가 여전히 전제되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실체적 존재의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절망의 시간들이 누적되지 않은 광장과 대중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가 그 시간 이후로 제게 남겨진 질문이었습니다.

외관상 차용되는 방식은 동일하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절망의 시간이 배제된 광장이 단순한 전도, 도착, 역전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나 한 존재를 바라보는 지각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 아닌가, 켜켜한 고통과 절망이라고 하는 광장의 기원을 망각하도록 하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그것이 이념이나 선동에 의해 한 존재를 가볍게 소멸하는, 다시 말해 존재의 고통과 절망을 오히려 유도하는 장치가 되는 것 아닌가 자조 섞인 의문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글은 고통에 대한 절망이 집단의 목소리로 분출된다는 믿음이 흔들린 연약하고 앙상한 한 개인이 느낀 짧은 무력감에 대한 기록인 셈입니다. 어디까지가 고통과 절망이고, 어디까지가 구호와 깃발과 분노만 나부는 이념과 정치의 광장인가, 그 경계를 은폐하고 모호해지도록 만든 광장 앞에서 고통과 절망의 광장을 망각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에 대한 기록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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