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생명(生命)
목숨과 생명(生命)
  • 안산뉴스
  • 승인 2019.10.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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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일본 APF 통신의 나가이 겐지 기자는 2007년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던 중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그런데 이때 그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셔터를 누르는 생생한 장면은 다른 기자의 카메라에 찍혀 전 세계로 타전되었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나가이 겐지는 평소 기자라는, 특히 분쟁 지역만 쫓아다니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누군가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분쟁지역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항상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라며 기자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을 밝혔었다. 그해 아시아 기자 협회는 나가이 겐지에게 올해의 기자상을 수여하였다,

공자가 세상을 주유할 때 광(匡)이라는 지역을 지나가다 갑자기 무장한 광 지역의 사람들에게 포위되었다. 예전에 양호라는 지방관이 광 지역을 다스릴 때 엄청난 폭정으로 지역 주민을 수탈하다 쫓겨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자의 외모가 양호랑 얼마나 비슷했던지 사람들은 양호가 다시 온 줄로 알고 공자를 공격하기 위해 에워쌌던 것이다. 자칫하면 공자는 억울한 죽임을 당할 판이었다. 광 사람들이 급박하게 포위망을 좁혀오자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때 공자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분연히 일어나 사자후를 토했다.

“문왕은 이미 돌아가셨으나 문(文)은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고 하셨다면 우리로 하여금 이 문을 전승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고 하지 않으시는데 광 사람들이 나를 어쩌겠는가!” 한마디로 공자는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천명이 있기에 헛되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기’의 ‘공자세가’에 전하는 일화이다.

일찍이 토인비가 ‘그의 걸음에 유럽이 깨어나고 있었다.’라고 까지 평했던 예수의 제자 바울은 뻔히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정하고는 자신을 말리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목숨과 생명은 다르다. 목숨은 목에 숨이 붙어있는 것으로 생물학적인 것임에 비해, 생명을 파자(破字)하면 ‘삶의 명령’이라는 가치론적인 의미를 지닌 의미이다. 모든 이가 목숨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을 가진 이는 자신이 이 땅 위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를 아는 자이며, 그것을 향해 과감히 자신의 삶을 몰아가는 사람이다. 나가이 겐지, 공자, 바울 등이 바로 그런 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명령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사람들이었고 그 명령을 충실히 실행했던 사람들이었다.

조국 장관이 끝내 사퇴하였다.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온 나라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어지러웠고 검찰 개혁을 비롯한 수많은 화두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필자는 그런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들을 떠나 조국 장관 개인에 대해 눈길을 돌리고 싶었다.

검찰 개혁이라는 과제가 조국에게는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남들은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그 가혹한 비난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두 달 넘게 그를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조국 장관은 사퇴하는 당일 오전까지도 본인이 할 수 있는 검찰 개혁에 관한 모든 사항들을 처리하였다.

그것에 사람들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분명 조국 장관에게 검찰 개혁은 이 땅에서 수행해야 할 그의 삶의 명령이었던 듯싶다.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시대이다. 학생들은 대기업 취직이 꿈이고 공무원 되는 것이 희망이다.

한마디로 ‘왜’는 없고 ‘무엇’만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목적이 있는 삶은 힘이 있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런 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온 몸을 던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국, 그는 적어도 내게는 부러운 사람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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