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우유
독이 든 우유
  • 안산뉴스
  • 승인 2018.11.0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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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웍 회장

1930년 어느 날, 조지아 대학의 해리 할로우(Harry F. Harlow) 박사는 갓 태어난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으로 훗날 접촉 위안이라 불리는 그의 유명한 애착 실험을 시작했다. 할로우 박사는 먼저 우유가 나오지만 철사로 된 대리모와 우유는 나오지 않지만 푹신한 천으로 된 대리모를 만들었다. 그리고 격리돼 있던 원숭이들이 과연 어떤 대리모에게 다가가는지를 관찰했다. 두 종류의 대리모 중 과연 새끼 원숭이들은 어느 대리모를 더 선호하였을까?

두 우리에서 키워진 원숭이들은 두말없이 헝겊 어미 쪽을 선택했다. 어느 우리에서 키워졌든 마찬가지였다. 배가 고프면 철사 어미 쪽으로 가서 우유를 먹었지만 하루 종일 헝겊 어미 쪽에서 보냈으며, 공포 상황을 연출하자 원숭이들은 헝겊 어미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리고 원숭이들에게 장난감을 주자 철사 어미 쪽에서 자란 원숭이들은 아무 관심이 없었던 반면 헝겊 어미 쪽에서 자란 원숭이들은 천천히 장난감에 접근했다.

또한 헝겊 어미에게도 우유가 나오게 하자 철사 어미와 함께 지냈던 원숭이들은 우유를 소화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자주 설사를 했으며, 심지어 헝겊 어미 쪽을 아예 없애버리고 공포 자극을 주자 철사 어미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빨거나 완전 얼어버리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실험의 가치는 사랑은 배고픔과 같은 육체적인 욕구 충족에서가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리적인 스킨십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이 실험은 향후 미국의 육아 교육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본질 탐구에 천착했던 할로우 박사 본인은 꽤나 불행한 삶을 살았다. 첫 부인은 실험실에 틀어 박혀 연구만 하는 할로우 박사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렸고, 아이 중 한 명은 죽고 두 번째 부인은 암으로 세상을 떴다. 할로우 박사는 잔인한 실험으로 세간의 따가운 눈초리를 많이 받았던 만큼 늘 술에 취해있었는데 두 번째 부인이 죽었을 때는 진료소에서 전기 충격요법을 받아야할 만큼 망가져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실험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파헤치려고 했지만 결국 그 자신은 사랑을 가지기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숙명여고에서 벌어진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숙명여고의 교무부장이 시험문제를 유출해서 자신의 쌍둥이 딸들에게 건넨 혐의로 결국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당사자들은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압수 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와 정황 등을 통해 혐의의 상당 부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자칫 잘못하면 자신은 물론 자신의 딸들마저 기소될 상황에 처해 버리고 만 것이다.

교무부장이 자신의 쌍둥이 딸들을 사랑해서 줘야 했던 것은 시험문제라는 우유가 아니었다. 정작 주어야 했던 것은 두 쌍둥이가 입시의 중압감 속에서 시달리다가도 언제든지 편히 와서 매달리고 쉴 수 있는 따스한 가슴과 함께 존경받는 교육자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뒷모습이었던 것이다. 설령 시험문제 유출이 발각되지 않고 그로 인해 두 딸이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더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법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운 두 딸의 삶이 과연 건강했을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아버지가 두 자녀에게 우유라고 준 시험 문제는 실은 우유가 아닌, 평생 후유증을 남기는 독약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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