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풍경 한 장
퇴근길 풍경 한 장
  • 안산뉴스
  • 승인 2019.11.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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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안산에서 사는 풍경을 적어본다. 화랑저수지 위쪽에 재단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어서 안산 시내 어디든지 접근성이 양호하다. 퇴근 이후 약속 장소에 가기에도 편하고 찻집이나 음식점을 찾기도 불편함이 없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은 주위 친구를 불러내 한대역 삼거리나 상록수역 포장마차에 들른다. 그곳에 가면 ‘서산집’이나 ‘정든집’이 있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지지고 볶고’ 요리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가끔 들르는 곳이다. 누추하지만 정겨운 그곳에 들어서서 기본 안주에 막걸리 한 잔 놓고 한동안 통화를 못한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최근의 근황도 묻고 시답지 않는 농담을 교환하며 큭큭거린다. 추운 겨울은 따뜻한 난로 옆에서, 더운 여름날은 탁 트인 야외 탁자에서 계절과 무관한 닭똥집 안주에, 많이 마시겠는가 딱 한 잔이면 좋을 술 한 잔을 가운데 놓고 서민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은 먼 곳에서 친구가 오지 않더라도 즐거운 퇴근 길 낙이다.

그런 포장마차는 대개 우리 같은 서민들인 자영업자나 직장인들이 오지만 대학생들이나 텔레비전에나 나올 법한 잘 생긴 총각들도 온다. 언젠가는 덜커덩 허니 우리 동네 부녀회장을 만나기도 했는데 항상 멋지게 하고 다니는 부녀회장님이 보험 회사에 다니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직장 상사에게 꾸지람 들은 이야기, 친한 친구와 돈 때문에 싸운 이야기, 다음 달에 화장품 가게를 오픈 한다는 이야기, 매출 실적에 고전하고 있다는 영업사원 이야기, 조국 법무장관 이야기, 민주당과 한국당 이야기, 꿈자리 좋아 로또를 샀는데 지지리 복도 없어 맨날 꽝이라는 이야기, 치매로 누워 있는 부모님 이야기 등 다양한 세상 이야기가 술잔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문득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나고 그러면 전화 한 통 해서 어머니 감기 조심하시라고, 저번에 다친 허리는 괜찮으시냐고, 부엌 보일러는 위로 한번 거꾸로 한번 잘 돌아 가냐고, 보건소는 잘 다녀오셨냐고, 갑자기 효자가 되어 걱정을 마구 쏟아낸다. 생각하면 구루마 안 몰고 오늘도 안녕하신 어머니가 고마울 뿐이다. 용기를 낸 나는 큰 소리로 ‘아주머니 오댕 국물에 소주 한 병 더 주시지요’ 하면서 주위도 보고 하늘의 지친별도 보고 4호선에서 내리는 시민들의 얼굴을 보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내가 맡고 있는 청소년재단은 금년에 출범했다. 매일이 분주하여 사적 모임에 참석하기도 어렵고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친구들 모임은 주로 주말로 미루어 놓는다. 학교 친구와 동네 친구를 뒤섞어 만나기도 하는데 지네들끼리 잘 어울려 놀더니 어떤 동네 친구는 동문회까지 참석해주었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가는 곳이 이런 포장마차이거나 강남동태탕집이고 곱창집에도 가고 또 한 철에 한 번 정도 수암산 등산도 한다. 댕이골 낙지집이나 춘천 아주머니가 요리하는 중앙교회 앞 토담집도 자주 들르는 단골집이다. 그 집 벽에 걸린 메밀밭 그림은 소금을 뿌린 듯한 하얗고 비릿한 메밀꽃 내음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밭 속의 허수아비는 어떻게 견디나 모르겠다. 저녁 식사가 아니면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데 음주 단속 때문이다. 낮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아무리 대낮이어도 막걸리 한 잔 아니 하고 음식점 문을 나설 때는 다소 허허롭기는 하다.

아무 것이나 가리지는 않지만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불원천리 달려간다. 나 신안 출신 아닌가. 맛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병어회니 민어회니 하면서 참견을 마다하지 않는다. 병어는 회로 먹어야 제 맛이고, 민어는 일전(煎), 이탕(湯), 삼회(膾)인바 전을 단연 으뜸으로 치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도시 사람들은 맨날 민어회, 민어회 한다면서 혀를 끌끌 찬다. 알아두면 쓸데 있는 잡학 알쓸신잡이다. 우리 시골 출신들은 이런 민어, 병어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끈기 있게 들어주고 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불현듯 오래 전에 가끔 가던 오류동 서울가든 지하상가의 고향식당이 생각난다. 가서 안방에 앉으면 ‘뉘집 제사 지냈냐’ 할 정도로 걸게 차린 24첩 반상이 상다리를 단번에 부러뜨릴 정도로 푸짐하다. 뜨거운 동부 밥에 곁들인 짭짤한 어리굴젓과 게장 맛이 콧등에 땀을 송송 맺히게 하는 곳이다. 그곳의 아주머니는 항상 수더분하고 욕설 섞인 목소리로 우리를 반겼으며 후라이판에 기름을 뚜루루 둘러 녹두 빈대떡을 재질재질하게 부쳐 당신 몸보다 더 넉넉한 접시에 담아 와서 우리와 합석을 해주곤 했다. 마지막으로 그곳을 갔던 때가 언제인지조차 모를 10여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걸쭉하고 웃음기 많은 그 아주머니 지금 잘 계신지 궁금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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