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또가 가르쳐준 진짜 여행
젤라또가 가르쳐준 진짜 여행
  • 안산뉴스
  • 승인 2019.11.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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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욱 안산관광두레PD

최근에 베트남 다낭을 다녀왔다. 4박5일의 길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참 다사다난한 여행을 보냈다. 유심(USIM)이 안 먹혀 다낭 공항에 주저앉아 1시간동안 핸드폰과 싸우기도 했고, 생전 운전해보지도 않은 스쿠터를 호기롭게 빌렸다가 베트남의 교통체계에 벌벌 떨며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일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주차해둔 차 앞에 섰지만 그제야 차 키를 잃어버렸단 사실을 깨닫고 새벽 1시에 택시를 타고 안산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로 여행의 클라이막스를 찍기도 했다. 관광두레PD라는 명함이 참 무색한 여행이었다. 지금은 이 모든 게 여행의 묘미라고 애써 포장하며 사람들 앞에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이렇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항상 듣는 질문 중 하나가 현지에서 먹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 어쩌면 그게 여행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비위생적이었지만 맛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음식인 길거리 ‘반미 샌드위치’, 풀떼기라 무시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밥도둑이었던 ‘모닝글로리’,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목욕탕 의자에 앉아 타이거 맥주와 함께 먹었던 ‘닭날개구이’, 진한 닭 육수에 은은히 퍼지는 고수 향이 일품인 현지 ‘쌀국수’까지 정말 원없이 다양한 음식을 먹고 왔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젤라또 아이스크림’이라 말한다.

10월 중순의 베트남은 찜통과 같았다. 안 그래도 강렬한 햇볕에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기는데 게다가 우기까지 겹쳐 고온다습의 최악의 날씨였다. 보통의 정상적인 사고라면 숙소가 있는 미케(My Khe) 해변에서 차로 15분 걸리는 한 시장(cho han) 부근까지 택시를 부르는 게 당연하지만 다낭에 도착한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설렘과 흥분 상태에서 나와 동행인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현지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해 1시간쯤은 기꺼이 걸을 수 있다고 자만한 것. 베트남의 무더위는 이내 우리가 교만했었다는 깨달음과 겸손한 마음을 심어주었지만 이미 절반을 걸어왔기에 택시를 부르기도 애매한 순간이었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젤라또’ 가게였다. 그렇게 우리는 도착한지 2시간 만에 첫 음식으로 젤라또를 먹게 되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뜻밖에도 이탈리아인 주인장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한시라도 빨리 입안에 시원한 것을 넣고자 매대를 대강 훑어본 뒤 주문을 하려는데 주인장은 고개를 저으며 기다리라고만 했다.

무언가 잘못된 건가 싶은 우리에게 주인장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나긋한 목소리로 우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평소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지 꾸덕한 식감을 좋아하는지, 과일을 첨가한 맛을 선호하는지 유제품 기반의 맛을 선호하는지, 커피나 초코 등 첨가물이 들어간 다양한 맛을 느끼고 싶은지 하나의 맛을 깊게 느끼기를 원하는지 등. 그렇게 한참을 심문(?) 당하고 난 뒤 후보군이 3개 정도로 압축되었다.

이제는 주문을 할 수 있나 싶었지만 또 다시 고개를 저으며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작은 나무 숟가락에 3가지 맛을 순서대로 건내 주었다. 한 가지씩 맛볼 때마다 해당 아이스크림의 재료와 맛, 제조과정 등을 일일이 설명해주었고 그 긴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잠시 고민할 시간을 주겠다며 주인장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기까지 장장 20분의 시간이 걸렸지만 어떠한 힘듦도, 지루함도 없었던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주인장과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웃고 떠들다 함께 사진까지 찍고 나온 우리는 그때의 여행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젤라또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단지 아이스크림을 ‘소비’하러 갔던 우리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아이스크림을 ‘경험’하고 왔다. 새로운 경험을 채워주는 것만큼 특별한 게 또 있을까. 이후 우리는 베트남을 ‘소비’하기 위함이 아닌 그곳 현지의 삶과 문화, 일상을 ‘경험’하기 위해 남은 여행의 시간을 보냈다. 많은 걸 보고 체험하고 구매하기 위해 다급히 걷지 않았다. 천천히 거닐며 현지인과 대화하고 그들이 주로 가는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 그들처럼 먹고 마시며 그렇게 베트남에서 5일을 살고 돌아왔다.

숙박업으로 유명한 ‘에이비앤비’의 슬로건은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이다. 유명 관광지마다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그때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다시금 떠올린다. 살아보아야 만이 이해할 수 있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고 그제야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관광이라는 이름 뒤에 소비, 파괴, 획일화 등 어두운 이미지를 걷어내고 관광 본연의 평화적 기여를 되찾으려면 살아보아야 한다. 비단 해외 관광뿐이랴. 우리네 모든 삶이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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