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시민
선배 시민
  • 안산뉴스
  • 승인 2018.11.0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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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협동조합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이사장

세계는 76억 명의 인구가 있고 저마다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76억 개의 개성이 존재한다. 우리 마을의 인구가 2만9천 명이니 그만큼의 다이나믹한 주민들이 알콩달콩 살고 있다고 봐도 될 듯하다. 마을계획으로 만들어진 슬로건인 “아이부터 어른까지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일동”은 마을에 사는 모든 주민의 바람을 300명이 원탁회의를 거쳐서 정했고 모두가 자연과 함께 행복 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마을에는 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 사연도 많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온갖 고초와 수모를 견뎌낸 우리의 부모 세대에서부터 전쟁과 독재, 보릿고개를 지나오면서 책을 여러 권 써도 모자란 한 많은 시절을 살아오신 주민들도 많이 계신다. 요즘 같이 모든 것이 풍족한 세대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고 자칫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로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풍족하여 남기는 것과 낭비에 익숙한 세대가 보기에 밥 한 톨이라도 아끼는 것이 고루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끼는 것이 몸에 밴 치열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로 인해 지금의 부유를 누린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는 세대 차이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후세에 모범이 되는 인생 ‘선배시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전에 보면 선배란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예(學藝) 따위가 많거나 앞선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인생이라는 같은 분야에서 연세가 높고 앞서 배우신 연륜이 마을의 자원이자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한학(漢學)에 능하고 동네 역사에 해박하고 요리를 맛있게 잘하고 손재주가 좋아 뭐든 잘 만들고 고치신다.

실제로 전북 어느 마을에서는 이런 어르신들이 모여 마을에 예식장을 만들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평범한 시골 마을이 발상의 전환을 이뤄 1년 내내 손님이 붐비는 분주한 일터가 되었다. 삶에서 얻은 노하우를 마을 정책 제안에 보태주기도 한다. 경험으로 만들어진 모범적인 소양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선배 시민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 경로당에서 소일거리를 하거나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무료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린이,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모일 공간은 충분한가! 생각해 보면 어느 하나 만족할 만한 공간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공간에 주목했다.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여서 선배 시민의 주옥같은 이야기도 듣고 요리해 주시는 맛난 음식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필자가 최근 몇 년 간 관심을 가지고 찾아 본 공동체 중에는 지역주민이 예술을 통해 인종차별의 갈등과 위기를 극복한 미국 미네소타의 인형극단과 지역을 위한 예술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커크브리 마을, 공교육 혜택에서 소외된 가난한 마을이지만 마을 전체가 힘을 합쳐 목각인형 기술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멕시코 틸카헤테 마을 등 작지만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낸 사례들이 많다.

그 중 필자가 주목한 일본 공민관 사례는 특별하지 않지만 동네 주민들이 모이고 수다 떨고 스스로 학습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아이부터 노년까지 자유로운 공간이다. 정해진 규칙도 프로그램도 없지만 주민과 세대를 아우르는 정이 가고 감흥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다. 우리도 그런 공간이 필요했고 이제 문을 연다. 그곳에서 선배 시민들이 펼칠 활약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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