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없는 집
별 볼일 없는 집
  • 안산뉴스
  • 승인 2019.12.0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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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주택신축비사’에 들어가기 전에 집안 이야기를 맛배기로 살짝 소개하고자 한다. 길게 쓰면 나중에 ‘낙도’ 편에서 쓸 것이 없어진다. 콘텐츠는 아껴야 하는 법. 내가 난 곳은 전남 서남해 끝단 신안이라는 절해고도다.

국내 유일의 100프로 섬으로만 이루어진 곳, 그러나 어업보다는 농업을 주로 하는 곳인데 밭작물 대파와 시금치는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소금을 포함하여 이 고장 3대 특산물이다. 서울 사람들이 좋아하는 민어와 병어 그리고 홍어도 이 고장이 원조다. 신안 위쪽 임자도 섬 중간에 위치한 조그만 집이 내가 난 곳이다.

다른 곳에서 쓴 부분을 보강하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언급하고자 하는 ‘집안일 맛배기’는 이렇다. 내가 태어난 우리집 즉 조부님 댁은 변변한 면장 하나 배출하지 못한 한미한 집이었다. 살아생전 조부님이 마을 사정이나 유래에 대해 아는 편이어서 각종 대소사에 관여하였으며, 동네 수로에 다툼이 생기거나 상량식 같은 것이 안 풀리면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와 조부님 조언을 들어가곤 했다는 마을 사람들의 전언을 종합하여 굳이 말한다면 조부님은 ‘방구님깨나 끼시는 재야 향토유지 급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죄송합니다).

대게 그런 분들이 신앙처럼 받들고 사는 것은 문중, 선영, 시제(時祭) 같은 창연한 것들이다. 진중한 당골래와 경건한 유교와 귀신과 성질내며 소통하는 미신과 낯익은 토속 신앙과 안온한 미풍양속이 골고루 뒤섞인 그들만의 조상모시기 방식은 그 찬란한 겉치레와 비가성비 때문에 서양 문물이나 기독교 사상에 의해 가혹하리만큼 격리 받아왔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런 형식을 통해, 그런 정신을 통해, 그들은 조상을 만나고 마을을 형성하고 자손을 퍼뜨리고 죽음을 준비해왔을 것이다.

질병에 걸린 아이를 밤중에 길거리에 앉혀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식칼로 악귀 죽이는 시늉을 하며 지극정성을 다해 주문을 외는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 하고 김해김씨 문경공파(文敬公派) 후손인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간직하면서 중절모에 회색 두루마기 옷고름 날리며 인근 해제면(海際面) 향교는 물론 멀리 경남 김해 수로왕(首露王) 능까지 출타하던 조부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조상모시기’에 심혈을 기울이시던 조부님은 훗날 일가 제족 형제들과 합자하여 가재를 팔아 문재답도 마련하고 인근 육지에서 여드레에 걸쳐 나룻배로 상석과 비석을 운반하여 고을 남서쪽에다 정성껏 선산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 선산이 우리 김씨 집안이 지금도 매년 시월상달에 시제를 지내는 시향산(時享山)이 되어있다. 선산은 자그마한 야산 한쪽 면 중간 부근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위는 가시덤불이 무성하지만 옆으로 너른 바다가 펼쳐지고 북은 바람막이가 되어있어 단정하다. 옛 군인들의 투구처럼 생겼다 해서 투구봉으로도 불리는 이곳에 선대 조상들이 잠들어 있다. 조상들께서는 이곳에서 유세차 축문을 불사르며 윗대 조상들에게는 극락왕생을 후손들에게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을 빌었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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