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비불명(不飛不鳴)
불비불명(不飛不鳴)
  • 안산뉴스
  • 승인 2019.12.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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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중국 춘추전국시대, 남쪽의 초(楚)나라에서는 목왕(穆王)이 죽고 아들 장왕(莊王)이 즉위하였다. 그런데 선친 목왕이 황하 남쪽까지 세력권을 확장한 것에 비해 장왕은 밤낮으로 주색에 파묻혀 있으면서 간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공포했다.

왕의 이런 생활은 어느덧 3년 세월이 흘렀고 당연히 정치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장왕의 명이 워낙 지엄했던지라 신하들도 감히 간언할 수가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오거(五擧)가 연회석 자리에 나와 간하였다.

“언덕 위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는 어떤 새입니까?” 장왕은 매서운 눈초리로 오거를 보더니 말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이를 것이고,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오. 알았으면 물러가시오.”

이후에도 장왕은 오거의 질문의 의미를 모르는 듯 여전히 음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 소종(蘇從)이 다시 장왕에게 나아와 간언했다. 장왕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에게 간언하는 것인가?” 소종은 머리를 조아린 채 말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눈을 뜨시기를 간언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장왕은 그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고 조정으로 나와 정사를 돌보기 시작했다. 즉위 초기 왕권이 불안했던 장왕은 일부러 정사에는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 3년 동안 주변의 신하들을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왕은 자신에게 아첨하며 본인의 이익을 챙기던 신하들을 솎아내고 대신 나라를 걱정하면서 목숨을 걸고 왕에게 간언하던 신하들을 등용하였다. 그리고 이후 초나라는 장왕의 지도에 힘입어 국력을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이 고사에서 새가 삼 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이란 고사가 나왔는데, 이는 뒷날에 큰일을 하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서초동에 이어 여의도에서 매주 검찰 개혁을 요구하며 촛불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조국 전 장관의 가족에 대한 구속과 아직도 집요하게 지속되고 있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에 대해 분노한다.

또한 자한당 의원들의 패스트트랙 위반 혐의에 대한 미적지근한 수사와 김기현 전 울산 시장에 대한 하명 수사 혐의를 검찰의 자기 기득권 방어를 위한 전략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고래고기 환부 사건은 검찰의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인식한다. 그들 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해 답답함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문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통치 권한으로 현안의 문제들, 특히 검찰 개혁을 과감하게 처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또 그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며 혹시 이러다가 문 대통령도 검찰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수에 능한 문 대통령의 계획된 일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검찰과 언론의 조직적 저항에 쓰러져간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보며 준비 학습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집권 초기 문 대통령은 박상기 법무부장관을 통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하며 검찰 개혁을 위한 불비불명의 시간을 보냈다고 본다. 그런데 천운이 따른 것인지 일본의 수출 규제와 더불어 조국 장관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통해, 장왕 시절 간신과 충신이 드러나듯 친일 세력과 적폐 세력이 더 일찍 스스로 그 정체를 드러냈고 이제는 그들을 솎아내고 검찰 개혁을 위한 마지막 고삐를 당길 순간만 기다리고 있다고 기대한다.

조국 장관의 사퇴 이후 한 달 이상 공석으로 있던 법무부장관에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가진 추미애 전 의원이 지명됐다. 언론에서는 장관 인선이 발표되자마자 추미애 후보자의 정치 이력과 함께 향후 전개될 예상 시나리오를 쏟아내기에 바쁘다.

그런데 추미애 장관의 지명이 의미하는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는 절대 흔들리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추미애 의원의 법무부장관 인선이 불비불명의 시절을 끝내고 문 대통령이 빼 든 검찰 개혁을 향한 마지막 칼날이 될지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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