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려운 사람위해 계속 담궈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위해 계속 담궈요”
  • 서정훈 기자
  • 승인 2018.11.14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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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자 삼천리마트 사장

지난 일요일 오후 3시쯤. 기자가 찾은 안산시 상록구 팔곡2동 삼천리마트! 마트 건물 공터에서 남성 여러 명이 김장에 사용할 배추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500여 포기가 될 듯 보인다. 약속장소인 마트로 바로 들어가려는데 배추를 다듬는 분들 사이로 여성 한분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트 사장님이신가요? 물으니 “네”하시며 주섬주섬 일어나신다. “이게 이번에 사용할 배추들이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안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 하자”고 마트 안으로 이끄신다. 기자가 만난 올해 69세의 정영자씨.

마트 카운터에 앉아있던 장년의 남성이 일어난다. “우리 아들”이라고 소개해 주신다. 김장봉사를 언제부터 하셨냐고 물으니 “한 20년...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 하신다. 옆에 있던 아들 이수환(43)씨에게 확인을 요청하듯 얼굴을 바라보니 “저도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요. 제가 어릴 때였으니까요. 20년 된 것 같아요” 군 제대한지 얼마나 됐냐 확인하니 “20여년 됐죠. 그 때쯤 시작했으니 20년 정도가 맞을 거예요.”

아들 수환씨는 부모님 두 분께서 수백 포기김치를 담그는 일이 힘에 겨워 보여 거들게 됐다고 말한다. “지금의 저 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드셨던 부모님 두 분 께서 배추 300여 포기를 담그는 것이 힘들어 보여서 돕게 됐죠. 한 해 한 해 김장을 담그다 보니 이제 1천여 포기를 담고 있네요.”

“김장행사가 2대째 가족 사업이 됐네요” 했더니 모자가 환하게 웃는다. 아들 이수환씨 얼굴의 미소가 어머니를 닮아 좋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준다. 언제부터 천포기를 담기 시작했느냐 물으니 4년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에 아들 수환씨는 결혼을 해 이제는 아들 내외와 부모님 넷이서 매년 김장행사를 해오다 4년 전부터 수환씨 직장인 농협 동료들과 본오복지관, 본오1동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본오1동의 동네행사가 되고 있다.

두 딸은 김장행사에 참여 안하냐고 물으니 큰 딸은 출가해 함께 하기가 어렵고, 막내딸은 일본에서 공부해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5개 국어를 하는 재원이 되어 애플사에 근무하고 있단다. 조만간 국내에 오픈하는 애플 코리아에 출근할 계획으로 이제 막내딸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된 것이 정영자 사장의 기쁨이다. 자식 농사에 억척스러웠던 정영자 사장은 세 남매를 모두 수원에 있는 학교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그중 막내딸은 일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는 동안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국비로 유학생활을 했다며 오가는 비행기 값만 들었다며 좋아하신다.

 

현재 살고 있는 팔곡동 토박이인 남편 이상원(70)씨한테 시집을 왔지만 시댁이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억척스럽게 마트를 하면서 논밭 1천200여 평에 농사를 지어 김장에 사용하는 재료를 공급하고 부족한 양을 구입해 김장을 하고 있다. “마트를 하니까 할 수 있다. 김치를 담을 상자도 많이 필요하고... 이런 것을 마트를 하니까 준비할 수 있다.”면서 “마트를 그만둬야 이 일을 그만둘 것 같다”고 하신다.

정영자 사장이 김장을 처음 시작한 20여 년 전. 동네에 김장김치를 담가 드시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어려운 살림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할 때는 이렇게 많은 김치를 담글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한 해 한 해 김치를 담그면서도 담고 나면 ‘올해까지만 해야지’ 라고 결심하지만 때만 되면 그냥 넘길 수 없어 20년 이상 해오고 있다.

소원이 무엇이냐 여쭈니 “11년째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께서 건강하시고 아들 딸들이 열심히 사는 거지 뭐.”하신다. 아들 수환씨에게 소원을 물으니 부모님이 건강하시면 좋겠단다. 부모님 건강하시지 않느냐 물으니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어머니는 디스크 수술로 온 몸이 편찮으시다.”

온 몸이 수술자국과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4시에 기상해 시장을 보고 마트에 와서 12시까지 마트를 지키다 남편과 교대하는 정영자 사장의 억척스러운 인생, 자식농사 잘하려 더 열심히 살아왔던 젊은 날을 보내고 어려운 형편에도 나 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20년 이상 김장담그기 행사를 해오고 있어서일까? 나 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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