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정치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정치
  • 안산뉴스
  • 승인 2018.11.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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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새벽 7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국공립유치원을 만들겠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퇴근시간까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립유치원’, ‘온종일 유치원은 맞벌이 부모의 고충을 덜기 위해 추진’이란 문장으로 온종일 유치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릭슨에 의하면 인간이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하는 주요한 심리적 기제는 신뢰와 불신입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양육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세상을 믿거나 반대로 불신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고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자율감과 수치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외부에서 긍정하고 수용하면 자율감을, 외부로부터 거절당하면 부끄러움을 핵심감정으로 갖게 됩니다. 만 2-3세 정도가 되면 또래 관계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며 자율감은 주도성으로, 수치심은 죄책감으로 확장됩니다. 주도성과 죄책감은 아이 안에서 경험되는 자율성과 수치의 감정이 집단 속에서의 관계를 통해 한 차원 더 넓어진 감정입니다.

물론 이런 감정들은 발달이나 연령에 따라 명확하게 구획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감정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겠지만 각 시기마다 핵심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불신과 수치와 죄책감도 신뢰와 자율과 주도와 더불어 발달해야 하는 주요한 정서입니다.

불신과 수치와 죄책감이 없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도, 관계를 반성적으로 사유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가 어떠한 비중으로 형성되는가는 중요합니다. 49대 51의 법칙이라고 학생들에게는 설명합니다. 열 번 중에 여섯 번을 긍정적 정서로 반응할 것인지 부정적 정서로 반응할 것인지는 한 인간을 설명하는 특성이나 성격이 됩니다.

영유아교육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불신과 수치와 죄책감을 경험하도록 하는 장입니다. 세상에 대한 신뢰를 통해 나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허용되는 환경 속에서 부정적 정서를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소화해 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오전 7시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등원(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하원(퇴근)하는 5살, 혹은 1살 아이의 삶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터를 가져다 놓고 아무리 훌륭한 교사를 모셔 와도 안전한 양육 공간이 되기 어렵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집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만나게 될 여러 교사들 또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춘 부모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유아교육은 노동자로서의 부모, 혹은 페미니즘의 부산물로 제공되는 서비스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엄마가, 아빠가, 노동자로서 편안하게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으로서의 서비스가 아니라 아이들이 잘 자라고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아이는 국가가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양육자와 가족, 좀 더 넓게는 마을 공동체가 아이들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키울 수 있도록 더 좋은 정책과 시스템으로 안전망을 제공하며 양육을 지지하는 언덕입니다. 우리가 청원할 것은 국가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유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기관으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회사가, 조직이 아이들의 생애 초기 몇 년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기본이 무시되는 것은 국가가 유아교육을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이슈로, 기업에 대한 복무로, 노동자에 대한 서비스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아교육을 아이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보아 주길 부탁드립니다. 교사 한 명이 10여명의 아이들을 태워오는 통학차량은 어린 유아들의 안전을 담보로 제공하는 부모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아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기관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양육자를 노동자로서만 보는 기업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가 욕망조차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여성보다도, 노동자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약자인 아이들의 목소리가 무엇일지 들을 수 있는 귀가 국가와 전문가는 물론 무엇보다 부모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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