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놓으니 편리합니다
지어놓으니 편리합니다
  • 안산뉴스
  • 승인 2020.02.0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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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그러나 다행히도 신식 새집(‘3번 집’)은 준공 15여 년이 넘도록 장남인 나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상기할만한 걱정은 없었고 어머니 건강도 큰 이상은 없다. 어너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흡족해하시고 틈만 나면 바지런히 거실이며 화장실을 닦고 문지르며 잘 관리하고 있다.

신식으로 지은 집은 듣던 대로 편리했다. 거실에서 문만 열면 화장실과 목욕실이 있고 밀창문 하나만 열면 입식 부엌이다. 예전에는 화장실 한번 가려면 찌럭찌럭한 길을 서른 댓 걸음 걸어가야 해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는데 신식 화장실은 편하고 위생적이었다. 보드라운 화장지에 누르기만 하면 물이 콸콰르릉 나와서 재래식 변소간에 쪼그리고 앉아 잠자리만한 모기에 궁댕이 뜯기던 고충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쌍팔년도 이바구이니 이것 역시 ‘천지개벽’임에 분명허리다.

날씨 궂으면 비 들칠까봐 토방 끝에다 두대(마루에 두르는 짚으로 만든 렴(簾)) 치기에 바빴고 문틈으로 하누바람 쏙쏙 들어오는 초겨울이면 온 식구가 한지 종이로 문풍지 바르는 일이 연례 행사였지만 지금은 그런 창호 문도 없고 유리창 문만 탁 닫아버리면 밖에 소나기가 오는지 태풍이 부는지 알 길도 없고 몰라도 된다. 또 아무리 문을 쾅쾅 두드려도 모른 척 누워 있으면 고약한 고약 장수 매몰차게 되돌려 세울 수 있는바 문명의 기술로 제작된 신식 가옥은 벽촌 사람들에게도 편리함과 안전함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문 잠궈버리면 ‘할머니 안산에서 택배왔습니다’하는 우체부 외치는 소리 잘 들리지 아니하고 비 맞은 스님 목탁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딱 요럴 때는 안방 대청문 다 열어 제친 구식 집이 더 정겹기는 하다.

이런 어머니의 새집 구상의 의중을 처음부터 간파하지 못한 것은 결론적으로 불찰이다. 뭐 이에 할 말 있겠는가. 어머니는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제 자식은 진학이고 군대고 직장이고 결혼이고 잘 챙기면서 제 어미에 대해서는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이니 치사랑은 내리사랑의 절반도 안 된다는 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어머니는 외롭고 허전하다. 그럴 때 어머니는 벽에 걸린 사진도 만져보고 그러다가 혹시 딸 아들 자랑이라도 하고 싶으면 개량 한복을 차려입은 다음 거실을 깔끔하되 살짝 어지럽힌 후 아들 사진이 찍힌 안산지역신문을 텔레비전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놓는다. 그런 다음 앞에서 실컷 흉을 본 ‘서 씨 마나님’이나 ‘금태 안경 낀 김 집사’ 등 ‘버르장머리 없는’ 이웃 할매들을 집합시켜 일장 연설 연후 지난 추석 명절에 나주 딸이 놓고 간 배즙 한 봉지씩 아낌없이 기마이로 돌리고 돌아갈 때는 요구르트까지 손에 쥐어 보낸다. CC-TV 보면 다 나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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