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감옥
생각의 감옥
  • 안산뉴스
  • 승인 2020.02.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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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이 청년 시절 읽었던 책과 그에 대한 단상을 나이 들어 다시 반추해 정리한 책이다. 그 중에는 맬서스의 ‘인구론’도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맬서스는 식량 증가의 속도가 인구 증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예측했다. 그런데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인구 증가는 억제될 수밖에 없는데, 맬서스는 인구 증가를 조절하는 그 어떤 방법의 가장 유력한 항목을 기근, 전쟁 그리고 전염병으로 보았다.

즉 식량이 부족해지게 되면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서로를 죽이거나 혹은 병들어 죽게 됨으로써 인구는 적절하게 조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인구 증가로 인해 인간이 겪을지도 모를 기근, 전쟁, 전염병이라는 대재앙을 막을 수 있을 방법은 무엇인가?

맬서스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가 소수의 부자와 빈곤한 대중으로 나뉘는 것, 빈곤한 대중의 빈곤이 영속되는 것,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영양실조에 걸려 죽고 버려지는 것, 이 모두가 자연법칙에 의해 주어진 회피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운명이다.

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 발버둥 치면 더 가혹한 운명이 찾아올 뿐이다. 전염병을 퇴치하는 공중 보건 정책이나, 빈민의 아이들을 국가가 양육해주는 구빈제도는 사망률을 낮추기 때문에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부자들이 개인적 자선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선은 고상한 동기에서 저지르는 사회적 악덕일 뿐이라는 것이 맬서스의 주장인 것이다. 맬서스가 보기에 인간의 평등권과 생존권을 옹호하는 모든 사상과 이론은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유해한 망상의 산물일 뿐이었던 것이다.

후에 그의 이론은 다윈이 주장했던 생존 투쟁, 적자생존이라는 생물진화론과 맞물려 후에 사회적 진화론과 우생학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사용되었으며, 아리안 우월주의를 내세운 나찌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는 데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맬서스는 비록 천재였지만 자신의 신념에 갇혀 사회적 논의에 눈감아 버린 편견 덩어리였으며, 그의 ‘인구론’은 금이 간 이론이었을 뿐이다.

작년 조국 사태에서 발화된 정치권의 논쟁은 온 나라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언론을 비롯해 SNS 등에 공개적으로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의견을 드러내는 논자들도 대개 상대방 진영의 합리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열려있다는 최소한의 모양새는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 올라오는 글들은 양 진영 모두 다 잔뜩 날이 서있을 뿐더러 상대 진영의 의견에 대해서는 단 한 치의 동의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이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객관성의 외피라도 유지하면서 사회의 갈등을 중재해야 할 지식인들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되는 지점이다.

한마디로 온 국민이 방송 매체나 SNS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진영 논리에 대한 확증 편향을 강화해가면서 오직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의 언어만 내뱉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소통은 실종되고 일방향 마이크의 볼륨만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따라서 갈등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한 쪽이 치명상을 당해야만 멈출 수 있는 상태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어느 일방의 승리로 이 갈등이 끝나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복수의 칼날만 잉태할 뿐 사회적 갈등 해소의 길은 난망해 보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갖가지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니고 산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통념이 논리적, 경험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시험하고 검토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많은 경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념과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맬서스와 얼마나 다른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신념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통념들 가운데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을 것인가? 내 생각도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은지 경계하면서, 거기에 나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생각은 때로 감옥이 될 수 있다!’

유시민이 이 꼭지의 맨 마지막에 적어 놓은 단상 중 일부분이다. 상대 진영에 날선 언어를 던지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던져볼 만한 조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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