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식사에 미처 담기지 못한 것들
한 끼 식사에 미처 담기지 못한 것들
  • 안산뉴스
  • 승인 2020.02.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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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욱 안산관광두레PD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한다. 바쁜 업무에 치여 사무실 밖으로 멀리 나가는 걸 꺼려하는 필자에겐 후딱 해치우고 돌아와 다시 업무에 열중할 수 있는 구내식당 시스템이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게다가 급식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음식이 나올 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따금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면 먹고 싶은 만큼 잔뜩 담아 먹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4천원이란 착한 가격이 구내식당을 절대 끊지 못하게 한다.

물론 4천원이란 가격은 딱 그 가격만큼의 퀄리티를 선사한다. 먹고 나서도 과연 점심을 먹은 게 맞긴 한 건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배는 채워졌지만 미각은 무척 아쉬운 상황이 종종 생기곤 한다. 맛과 퀄리티를 생각하면 웃돈을 얹어 제대로 된 점심식사를 만끽하고 싶기도 하지만 동선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내일도, 모레도 구내식당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4천원의 보잘 것 없는 한 끼 식사에 무얼 더 바라랴. 저렴한 식사 안엔 그 가격만큼의 가치가 담겨있는 법이니 생각하곤 한다.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에 대해 냉정하리만치 시장 중심적으로 설명하는데, 가격에 대한 그의 신봉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 때문이다.” <국부론 중>

그는 수요와 공급의 교차점이 만들어 내는 가치(가격)에 대해 꽤나 신뢰했던 듯하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공정한 그라운드 전제 하에 가격은 온전한 상태의 시장을 운영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정확히 담아내기 위해 많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잠재가능성이라는 미래적 가치를 담기도 하고, 시장심리와 같은 다소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가치마저 가격을 통해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권리금이나 자릿세와 같은 명성 가치를 담기도 한다. 서울시에선 봉사와 헌신을 가격으로 환산한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가격은 만능지표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공정한 그라운드라는 전재 하에 가격은 그 자체로 이상적이고 공정한 가치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최근 한겨레신문의 ‘2020 노동자의 밥상’ 연재기사를 보며 가격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됐다. 오전 7시 전까지 물품을 배송하기 위해 500ml 콜라 두 병으로 끼니를 때우는 택배 기사님들의 이야기, 900명분의 점심을 차려내기 위해 10분 만에 밥을 삼켜 넣는 것도 모자라 화상과 끼임 등 사고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야만 하는 급식조리원들의 이야기를 보며 과연 우리가 접하는 가격이 공급과 수요의 풀 스토리를 담아내는 척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들의 열악한 노동인권과 희생은 가격에 충분히 반영된 것일까? 이들 노동자가 누려야할 삶의 만족과 행복은 가격에 온전히 담겨져 있는 것일까? 아무리 곱씹고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지불하는 4천원의 한 끼 식사 가격 안엔 재료 조달과 사용되는 연료, 시간을 환산한 인건비만 담겨 있을 뿐 이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과 삶의 만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지불한 4천원은 표면적으로 소모되는 자원에 대한 보상만 담겨있을 뿐이다. 이를 두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종종 구내식당의 퀄리티에 아쉬움을 느끼곤 하지만 대체로 나는 4천원 지불을 통해 포만감 이상의 휴식의 즐거움, 먹는 기쁨을 누린다. 나는 4천원의 가격으로 포만감 이상의 즐거움과 만족을 구매한다. 내가 구매한 즐거움과 만족만큼 나를 위해 헌신하는 누군가도 똑같은 즐거움과 만족을 누렸으면 좋겠다. 내 소비가 누군가의 착취와 고통이 되지 않기를, 단지 돈과 상품을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를 넘어 행복과 만족을 서로 주고받는 거래가 되기를 바란다.

미처 담기지 못한 것들을 충분히 반영한 새로운 가치(가격)가 매겨지면 참 좋으련만 아마 구내식당의 한 끼 가격은 원재료비의 인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어쩌랴. 가격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또 다른 노동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보잘 것 없는 한 끼 식사를 대하는 태도를 고쳐먹는 수밖에. 그렇게 오늘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저렴한 한 끼 식사를 마주하며 이 식사가 마련되기까지 거처 간 수많은 희생과 노고에 깊은 감사 기도를 올린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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