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을 수용하는 법
저항을 수용하는 법
  • 안산뉴스
  • 승인 2020.02.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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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작가 은유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었습니다. 산업체 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 죽음에 대한 르포였습니다. 2013년 11월 12일 CJ진천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김동준군은 2014년 1월 20일 직장 내 괴롭힘과 폭력으로 자살했습니다.

2016년 9월 8일 전주LG유플러스 고객서비스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홍수연양은 2017년 1월 23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017년 7월 20일 제주음료제조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 이민호 군은 2017년 11월 9일 기계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각각의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글로, 반복된 사고와 비슷한 상황으로 예견됐고, 죽음은 그 끝에서 떠밀리듯 이루어졌습니다.

작가는 학생들이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프게 꺼내놓습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초반 적응 시스템이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모두가 꺼려하는 일이 조직의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다는 것,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항을 수용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부적절한 상황에 대해 제기된 문제를, 공적으로 제기된 누군가의 고통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개선하는 것이 조직의 윤리가 되어야 함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2016년 10월 tvN 신입 PD 이한빛은 과도한 업무와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문제, 사내폭력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대구예술대학의 한덕환 교수는 2년 간 전혀 수업 받지 않은 학생을 졸업시킨 당시 학과장의 학위장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오히려 한덕환 교수에게 무고한 혐의를 씌웠고 그는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법원의 무혐의 처분 판결이 나오던 2018년 12월 22일 결국 그는 학교 건물에서 투신 사망했습니다.

이한빛 PD와 한덕환 교수는 조직의 부당함에 대한 침묵 대신 저항을 선택했습니다. 신입 PD의 저항은 적극적이기 보단 소극적이었을 테고, 중견 교수의 저항은 보다 적극적이었을 겁니다.

각각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회사와 학교는 제기된 문제를 수용하고 해결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기존의 안전한 질서를 위협하는 그들의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애썼습니다. 개인을 무력화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모멸이었고 조직이 상부의 힘을 이용하여 한 개인에게 가하는 모멸은 평가, 징계 등의 사회적 언어로 포장되어 한 개인을 훼손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저항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 청소년도, 저항해야만 하는 당위를 인식하고 저항한 젊은 청년과 중년의 성인도 저항을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 앞에서는 죽음이란 동일한 결과로 귀결됐습니다.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저항을 수용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그러니까 조직이, 그러니까 갑이 먼저 배워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장 상위의 포식자가 아니라면 우린 결국 저항하면서도 저항을 수용하는 갑이면서 을인, 을이면서 갑인 결국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저항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이들도, 저항을 선택한 이들도 저항을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의 윤리 앞에서 소멸한 생의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있는 우한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제기한 문제로 저항한 의사 리원량의 명복을 빕니다. 이곳과 저곳의 수많은 저항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집단과 조직의 윤리가 우리 바로 옆의 사람을, 결국 서로를 지키는 힘이 될 거란 믿음을 우리가 함께 갖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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